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씁쓸한 유로 2012

마리아노 라호이 스페인 총리는 스페인이 1,000억유로(145조원)의 구제금융을 신청한 다음날인 지난 10일(현지시간)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2012)가 열리는 폴란드로 날아가 자국 대표팀을 응원했다. 전세계로 송출된 이날 TV 중계화면에는 라호이 총리가 환호하는 모습이 실시간으로 방송됐다.


경제위기에 따른 지지율 추락으로 위기에 처한 라호이 총리 입장에서 보면 이번 유로2012는 '실업률 25%'시대에 살고 있는 국민들의 분노를 누그러뜨릴 유일한 돌파구일 것이다.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겁쟁이 라호이(Rajoycobarde)'와 같은 문구가 인기를 끌며 불만 여론이 나타나자 라호이 총리는 "우리가 받을 돈은 구제금융이 아닌 긴급 대출이며, 스페인 대표팀은 이만한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다"며 짐짓 여유 있는 태도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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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7일 유럽의 운명을 가를 역사적인 재총선을 앞두고 있는 그리스에서도 비슷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그리스 축구 대표팀의 주전 공격수인 요르고스 사마라스는 출정 직전 기자회견에서 "그리스인이 대표팀의 선전을 통해 고통스러운 일상에서 탈출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밝혔다.

양국 국민들이 거는 기대도 각별하다. 주요 현지 언론들은 대표팀의 경기 결과와 전술 등을 연일 톱뉴스로 다루며 무한한 기대를 드러내고 있다. 공교롭게도 그리스와 스페인은 지난 유로2004와 유로2008에서 각각 우승컵을 들어올린 경험이 있다.

사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겪으며 구제금융을 굴욕으로 생각하는 우리 입장에서 양국의 모습은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우리도 박찬호나 박세리 같은 스포츠 영웅을 통해 위로를 받았지만 가정이나 일터에서는 장롱 속 금을 내놓았고 허리띠를 졸라맸다. 하지만 이들 나라의 국민들은 자산을 빼돌려 런던에 부동산을 사거나(스페인) 세금 납부를 회피하는 등(그리스)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게 사실이다. 유럽호(號)의 승객들이 축제의 환성에 취해 눈앞의 빙산을 놓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서일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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