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 12월 25일] <1585> 한남대교


1969년 12월25일, 강북 한남동과 공사중인 경부고속도로를 잇는 다리가 완공됐다. 지금은 기억 속으로 사라져간 다리의 이름은 제3한강교. 한강철교가 가설(1900년)된 이래 제1한강교(한강대교ㆍ1917년), 제2한강교(양화대교ㆍ1965년)에 이은 세 번째 인도교라는 뜻이다. 당면 건설 목적은 안보용. 유사시 강북에 집중된 인구의 대피로 확보가 1차 목표였다. 당초 왕복 4차선, 폭 20m의 설계가 왕복 6차선에 폭 20m로 변경된 것도 공사 도중 북한이 평양에 폭 25m짜리 교량을 건설하고 있다는 첩보에 자극 받았기 때문이다. 안보 차원에서 공사비 11억3,300만원을 투입해 건설한 이 다리는 서울은 물론 국가 전체의 경제지도를 크게 바꿨다. 강남 개발과 부동산 투기가 시작된 것이다. 다리 건설 이전에 논밭이었던 이 지역의 땅값은 평당 평균 300원. 시공 2년 만에 가격은 5,000원선으로 뛰었다. 경부고속도로가 완공된 1971년에는 1만4,000~1만6,000원까지 올랐다. 신사동뿐 아니다. 지금의 양재역 부근 지가도 크게 올라 '말죽거리 신화'와 부동산으로 한몫 잡는 '복부인'이라는 단어가 생겼다. 강남 부동산 값은 이후에도 떨어질 줄 몰랐다. 건축제한, 택지개발 금지 같은 강북개발 억제와 명문 고등학교 이전, 지하철2호선 우선 착공, 고속버스터미널 건립 같은 집중적인 강남 지원책 덕분이다. 강남과 도시의 성장과 함께 이 다리도 왕복 12차로, 폭 51.2m로 커졌다. 이름도 1985년 한남대교로 바뀌었다. 변하지 않은 것은 가수 혜은이가 1979년 발표할 때 퇴폐적이라는 이유로 검열당국으로부터 퇴짜맞을 뻔했던 '제3한강교'의 가사뿐이다. 강물은 오늘도 흘러만 간다. 의도된 강남북 격차와 양극화 속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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