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태수씨 “청문회 농락”/한보 청문회 초점

◎“진실규명은 커녕 해명·면죄부 주는 꼴”/당리당략·면피성·감싸기 질문도 문제반사회적 기업인 정태수씨가 청문회를 농락했다. 7일 정태수 한보그룹총회장에 대한 신문으로 시작된 한보청문회에서 정총회장은 『모른다』 『기억이 없다』 『그런일 없다』로 일관하다 때로는 호통까지 치면서 뻔뻔스럽게 발뺌했다. 수서사건에 이어 노태우비자금 사건, 5조원의 국민 돈을 유용한 한보사태를 일으켜 국가경제를 위기로 몰아넣은 반사회적 기업인 정총회장은 한점의 반성기미도 보이지 않는 당당한 모습이었다. 이번 청문회는 국민들의 간곡한 요구인 진실을 밝혀내기는 커녕 진상을 호도한 정씨의 궤변성 해명을 들어 면죄부를 주는 격이 됐다. 잘못하면 5공청문회의 장세동씨처럼 청문회 스타가 될 가능성도 있다. 특히 금융기관 거액대출비리와 김현철씨 개입의혹, 92년 대선자금 제공 등 핵심사안에 대한 진상규명의 열쇠를 쥐고 있는 정총회장이 이날 답변을 통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 일이 없다』 『모른다』는 식으로 말해 해명의 자리만 제공했다. 더구나 특위위원들의 질문마저 초점이 없고 사태의 본질보다는 상대당 흠집내기와 소속당 의혹해명에 집중돼 진실규명의 의지가 없어 보였다. 특위도, 정씨도 국난을 몰고 온 이 사태의 실체를 파악할 의지도, 최소한의 양식도 보여주지 못했다. 국민들은 이번 청문회에서 세간의 의혹을 사고 있는 거액불법대출과정과 「정태수리스트」, 한보비리의 정·관계 커넥션, 지난 92년 대선자금 제공설 등 한보게이트의 실체가 제대로 밝혀지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정총회장은 대출압력에 따른 정치자금 제공 등 불리한 질문의 경우 『잘 모른다』『현재 재판중이라 말할 수 없다』며 발뺌으로 일관했다. 반면 정총회장은 5조원에 달하는 거액 대출과정과 비자금으로 유용된 것으로 알려진 1조3천억원에 대해서는 『어떤 금융기관이 담보없이 큰 돈을 빌려주겠느냐』 『1조5천억원 정도는 금융기관의 금리로 활용됐다』는 궤변으로 국민을 농락했다. 기업 부실화에 따른 대규모 부도로 금융기관의 대외신용도 추락 등 경제난국을 초래한 정총회장은 정부가 3천억원만 더 대출해주었더라면 한보철강이 부도도 나지 않았고 추가로 공사비 1조원을 투입할 경우 한보철강이 정상가동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 선량한 국민들을 경악케 했다. 예컨대 신한국당 이신범 의원의 『김현철씨가 당진공장에 온 일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모른다』고 답변했으며 국민회의 조순형의원의 『한보그룹을 비호한 실세는 누군가』라는 질문에 『나 이외에는 없다. 담보와 사업성으로 대출을 확보했다. 적기에 해달라는 취지로 홍인길 의원에게 부탁한 것밖에 없다』고 말했다. 따라서 이번 청문회는 첫날부터 한보게이트 진상규명보다는 「미운 놈 찍고 진실을 호도한 정씨의 해명장이 되었다」는 비판이 강하게 일고 있다. 국회 한보국정조사 특위위원들의 질문태도와 청문회 제도 자체에도 문제점이 적지 않다. 이들은 한보게이트에 여야 정치인이 대거 연루된 탓인지 당리당략에 치우쳐 그동안 언론에서 제기된 자기당과 상대당의 관련 사항을 거론하면서 정씨의 입을 빌려 면죄부를 받거나 상대에게 타격을 주는 면피성 질문에 급급했다는 지적을 면키 어렵다. 특히 신한국당 이사철 의원은 『김영삼 대통령과 92년 대선직전 온양에서 만났다는 얘기가 있는데…』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에게 30억원을 주겠다고 했으나 김총재가 거절했다는 얘기가 있는데 사실인가』라는 질문에 각각 정총회장이 『전혀 없다』 『모르겠다. 그 얘기는 내가 한 얘기다』고 언급했다. 이들은 또 사전에 다각적인 자료조사를 통해 한보 의혹을 밝히는데 주력하기는 커녕 구체적인 증거제시도 없이 「자물쇠」로 알려진 정씨의 입을 열겠다고 나서는 어리석음을 연출했다. 물론 이번 청문회에서 신한국당 맹형규 의원이 정총회장으로부터 신한국당 김덕룡, 국민회의 김상현, 자민련 김룡환 의원 등에 대한 정치자금 제공여부에 대해 『회사직원이 준 것으로 알고 있지만 기억이 안 난다』고 밝혀내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국회 국정조사와 청문회 제도는 어떤 사건에 대해 검찰조사가 미진할 경우 국회차원에서 진상을 철저히 파헤치기 위해 실시되고 있으나 관련 자료수사나 금융거래조사 등에 대해 과학적이고 조직적인 수사방식이 아니라 신문하는 증인의 진술내용에 의지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구속수감된 정총회장의 경우 위증을 할 때 적용되는 위증죄(징역 1년 이하)를 두려워할 이유가 없으며 재판중인 사항에 대해 진술을 거부할 수 있다는 법을 알고 있는 이상 불리한 증언을 할 가능성이 희박하다.<황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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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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