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경제학자 에른스트 슈마허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저서를 통해 거대 산업과 거대 도시, 대기업 중심의 산업사회에 대해 경종을 울린 바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수도권 집중화이다. 국토의 11.8%에 불과한 수도권에 전체 인구의 46%, 제조업체의 56%, 금융의 68%, 공공청사의 85%, 세수의 71%가 집중돼 있고 특히 향후 주력 산업인 정보기술(IT) 분야의 산업생산력은 98%가 집중돼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외환위기(IMF) 이후 수도권과 지방간의 경제적 격차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데 있다. 조사에 의하면 지역경제회복지수(RERI)의 경우 수도권이 154인 데 비해 지방은 7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도권 일각에서는 "규제위주의 수도권 정책이 세계화에 역행하고 있다"는 이유로 수도권 규제완화를 위해 관련 법령을 개정하거나 이를 서두르고 있다.
즉 "글로벌 경쟁체제하에서 우리 경제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산업구조를 지식집약적인 체제로 전환시켜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외국자본을 끌어들여야 하는데 현재와 같은 수도권 억제 속에서는 한계가 있다"는 논리다.
일면 타당한 주장처럼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기본적 역할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시장경제논리에 맡길 분야가 있고 정부가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할 일이 따로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소외계층을 보살피는 정부의 복지정책이나 공교육 제도 등은 시장경제의 논리에 맡길 수 없기 때문에 정부에서 나서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 문제에 대한 접근방식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보다 분명해진다. 이것은 '규제냐, 완화냐' 또는 '시장경제에 의한 경쟁논리'로 해법을 찾을 일이 결코 아닌 것이다.
다시 말해서 국토의 효율적이고 균형 있는 이용개발과 보전을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으로 '정부의 역할이 무엇이어야 하는가?'라는 전제하에 정부의 권능으로 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한 조정력을 발휘하는 것만이 문제해결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는 성질의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면 정부는 그 조정력을 어떻게 발휘해야 하는가.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것의 해답을 '지방분권과 분산'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는 지방의 자생력이 확보될 때까지 '수도권 집중억제' 기조를 유지함을 전제로 한다.
분권론의 대가인 헨더슨(Gregory Henderson)도 "중앙집권이 수도권 집중을 초래한다"며 '중앙권한의 분산' 없이 외치는 지역균형개발은 공염불에 불과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미국ㆍ 스위스ㆍ캐나다ㆍ독일 등 분권형 국가의 수도인구의 비중은 1.5~5%인데 비해 집권형 국가인 일본ㆍ영국ㆍ프랑스ㆍ포르투갈 등은 9~19%로 높은 집중현상을 보이고 있다.
최근 발표된 경제협력개발지구(OECD) 한국지역정책보고서도 우리나라의 지역문제에 대해 의미 있는 충고를 하고 있다. 그중 하나는 우리나라의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관계가 여전히 수직적으로 제도적 틀에 대한 수정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우리나라의 지역격차가 이미 심각한 상황에 이르고 있기 때문에 지역격차 해소와 국토균형개발이 정책의 최우선과제로 추진돼야 한다는 것이며 "중앙정부의 분산화 노력이 미흡하다"고 꼬집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OECD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이제까지 정부의 움직임을 보면 지방분권화 개혁이 실종된 채 공장총량제를 완화하고 공업배치법령 등을 개정해 또 다시 수도권으로 전부 모이라고 재촉하는 악순환을 되풀이하고 있었던 것은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다.
침체일로의 지방을 살려나가기 위한 대안도 없이 눈앞의 작은 과실만을 따먹다가 뒤따라 올 부작용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미 연간 6조원에 육박하는 수도권의 교통혼잡비용 및 공해부담비용이 수도권 과밀화로 눈덩이처럼 불어나 이것이 한계에 이르게 될 때 그 천문학적인 분산비용은 누구에게 부담시킬 것인가.
이제 정부가 해야 할 명제는 분명해졌다.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가 상당 부분 해소될 때까지는 수도권에 대한 현 수준의 규제를 유지한다는 큰 원칙을 세워놓고 정부가 조정자적인 위치에 굳건히 서서 미래를 내다보면서 일관되게 밀고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행정수도를 충청권 지역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주장도 이와 같은 맥락 속에서 그 의미를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심대평<충청남도지사>
document.write(ad_script1); ▲Top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