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진단] ■ 회사채 신속인수제, WTO협정 위반인가
'특혜' 시비속 통상마찰 불씨 여전
현대전자의 회사채 신속인수가 WTO(세계무역기구) 보조금 협정위반이라는 로버트 죌릭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의 발언을 계기로 한미간 통상마찰 우려가 높아가고 있다.
비록 국제통화기금(IMF)이 '금지보조금'이 아니라며 우리 손을 들어줬고 정부도 적극적인 진화작업에 나섬으로써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지만 회사채 신속인수제는 언제든지 불거질 수 있는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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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미국의 반도체 회사인 마이크론사가 그 동안 한국 반도체 산업에 이런 저런 시비를 걸었던 것을 감안하면 이 제도가 존속(1년)하는 한 통상마찰의 불씨는 여전하다는 지적이다.
◇회사채 인수제, WTO보조금협정 위반인가=WTO 보조금 협정에서 규정한 '금지보조금'은 ▦정부에 의한 재정적 지원여부 ▦해당 기업의 수혜여부 ▦지원 대상에 대한 명백한 범위 설정여부 등 등 3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됐을 경우를 의미한다.
최근 통상이슈화된 '현대전자에 대한 정부의 구제'는 회사채 신속인수제가 금지보조금이나 다름없지 않느냐는 게 미국측의 시각이다.
회사채를 인수하는 산업은행이 정부투자기관이라는 점에서 첫 번째 요건은 일단 충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제도는 지원 대상을 특정 기업인 현대전자에 국한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금지보조금으로 볼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또 회사채 금리도 유통금리에 최소한의 가산금리를 적용했기 때문에 현대전자가 눈에 띄게 수혜를 입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물론 이 조건에 현대전자가 회사채 발행이 여의치 않지만 자금시장이 경색된 특수성이 감안돼야 하고, 시장시장이 호전되면 이 조건에서 얼마든지 발행할 수 있다는 게 정부의 시각이다.
현대전자의 경우 가장 큰 논란의 소지는 지원대상이 특정기업을 겨냥한 것인지 여부.
산업연구원 김규태 연구위원은 "이 제도가 외견상으로 특정 기업을 지정하지는 않았지만 회사채 인수대상이 1월중 6개 회사밖에 없었고, 특히 현대전자 물량이 인수액의 60%로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점은 '특정성'시비에 휩쓸릴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앞으로 인수대상기업이 늘어날 것이므로 이것 역시 별 문제가 없다는 것이 정부측 설명이다.
◇통상압력용 카드로 사용할 가능성 높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회사채 신속인수문제를 WTO에 제소하기 보다는 통상압력을 위한 카드로 사용할 가능성이 많은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승소 가능성이 별로 없는데다 제소후 WTO의 판정까지는 2~3년가량 걸리지만 회사채 신속인수제는 올해로 종료돼 그 실효를 거두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자동차분야의 심한 무역역조를 겪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국내 자동차 시장 문호를 더 개방할 것을 반대 급부로 요구하거나 이를 빌미로 미국의 수입규제에 대한 우리측 대응을 무디게 하는 전술을 구사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또 미 정부가 직접 나서지 않고 마이크론사를 통한 우회 통상압력도 점쳐진다.
김 연구위원은 "회사채 인수조치는 WTO가 규정하는 수출보조금인지 여부가 불확실한 만큼 승소를 장담할 수 없는 WTO제소보다는 마이크론사의 제소를 거쳐 상계관세를 부과하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마이크론사가 구체적인 피해근거를 제시해야 하는 데 지난해 큰 폭의 흑자를 냈기 때문에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회사제 인수제와 관련한 통상마찰의 소지는 적지만 쓸 데 없는 마찰을 피하기 위해서는 대상기업 선정기준을 보다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운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권구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