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2기 노무현 정부의 과제
정용덕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행정학)
정용덕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17대 총선이 있은 지 두달반이 지난 최근 원구성에 관한 국회 합의가 이뤄졌다. 그리고 이해찬 국무총리 임명동의안 가결 및 취임과 함께 정부 3개 부처에 대한 개각이 단행됐다. 이로써 지난 3월 초의 대통령 탄핵에서부터 시작해 4월 총선과 6월 지방자치단체장 보궐선거를 거치면서 소용돌이 속에 휘말렸던 정국이 일단 재정비된 셈이다. 임기 5년의 노무현 정부로서는 출범 1년을 막 넘긴 시점에서 일찌감치 중간평가를 받은 것이기도 하다.
극단적 대결형태 논의 지양
4ㆍ15 총선 결과에 관해 서구의 주요 언론들이 궁금해 한 것은 한국이 ‘좌경화’하고 있는가라는 점이었다. 그렇다면 이는 최근 일본의 ‘우경화’ 경향과는 정반대 방향의 변화가 이뤄지고 있는 것인가에 관해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에 이뤄지고 있는 한국 사회의 변화를 단지 좌-우 이념의 단선적 시각을 적용해 해석에는 한계가 있다.
물론 10석에 이르는 민주노동당 소속 의원들을 포함해 스스로를 진보적이라고 자처하는 의원들이 대거 국회에 진출한 것은 한국 정치사에서 커다란 변화가 아닐 수 없다. 또한 과거 권위주의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사안들에 대해, 그것도 보수와 진보의 이념을 넘나드는 사회적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같은 최근의 현상은 한국 사회의 좌경화보다는 정치적 다원화로 해석하는 것이 더 옳다.
과거 보수 우파적 시각만이 허용되던 권위주의 시대에는 많은 사회적 이슈들이 제도권의 정책 논의에 진입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 이슈들의 대부분은 제도권 밖에서 어떤 형태로든 제기됐고 그로 인해 사회적 불안이 초래되기도 했다. 그동안 배제됐던 이 다양한 사회적 이슈들이 최근 민주주의로의 이행에 따라 제도권의 정책 논의에 포함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환경 보호, 성 평등, 개인의 사생활 및 정보보호 등 최근에 제기되는 사회적 논의 가운데 좌우 이념보다는 탈근대주의적 가치의 반영인 것도 적지않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당연시해왔던 기존의 가치관과 제도 그리고 관행에 대해 의문을 제기, 인적 및 사회적 자산은 보존하되 그렇지 않은 것은 과감하게 해체하고 재구성하려는 것이다. 이는 21세기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인들에게 요구되는 적극적인 자세가 아닐 수 없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과거에 억제됐거나 새로이 제기되는 사회적 이슈들이 대거 정책의제에 포함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기보다는 이 이슈들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는 방식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사회 문제가 발생한 주변에서 작은 규모로 그리고 담론의 형태로 해결 방법이 강구되고 합의에 도달하기보다는 전국적인 수준에서 대규모로, 게다가 극단적인 대결의 형태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좀더 오랫동안 제도화해온 나라들이라면 그다지 큰 사회 갈등으로 불거지지 않고 비교적 쉽게 해결될 수 있는 사안들이 우리는 걷잡을 수 없이 큰 규모의 사회 갈등으로 비화되고는 한다. 설상가상으로 논의가 대결의 형태로 전개됨으로써 사회 구성원들간의 ‘포지티브 섬’이 아닌 ‘제로 섬’ 게임으로 마무리 된다.
다양한 정책 참여제도 필요
이와 같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정책 이슈의 다원화 현상에 걸맞는 정책결정과정의 다원화를 구축하는 것 외에 다른 왕도가 없다. 경제를 비롯, 정치ㆍ사회ㆍ문화 등 정부 정책의 결정단계에서부터 시민사회의 다양한 의사가 고르게 투입될 수 있도록 다양한 참여기제를 제도화하는 일이다. 사회적 사안들이 제기된 주변에서 가능한 작은 규모로 논의되고 합의에 도달할 수 있도록 역시 다양한 제도적 장치들을 마련하는 일이다. 한마디로 통치(governance) 체계의 분권화ㆍ분산화ㆍ다원화를 의미한다.
우여곡절 끝에 조기 중간평가를 통과하고 이제 3년 6개월여의 제2기를 시작하는 노무현 정부가 전력을 기울여야 할 국정개혁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입력시간 : 2004-07-05 16: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