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5년 8월4일 뉴욕. ‘뉴욕 위클리 저널’ 편집장인 존 피터 젠거(John Peter Zenger)가 공판대에 올랐다. 윌리엄 코스비 뉴욕 식민지 총독의 전횡과 학정을 폭로하다 명예훼손죄로 체포돼 감옥에서 9개월간 복역한 마당. 일반적인 예상은 유죄였다. 화가 치밀어 신문까지 불사른 총독의 분노에 변호사 구하기도 어려웠다. 배심원단이 내린 평결은 무죄.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온 것은 변호사마다 회피하던 변론을 맡겠다며 필라델피아에서 달려온 앤드루 해밀턴 덕분. ‘진실을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억압하는 것은 시민의 권리에 대한 제한’이라며 ‘커다란 강과 같은 권력이 잘못 행사되면 모든 것이 파괴될 것’이라는 해밀턴의 변론이 먹혀들었다. 재판 당시 북아메리카 영국 식민지에서는 언론이 막 피어나던 상황. 1704년 최초의 신문이 나온 이래 22개 신문이 생겨 경쟁을 벌이기 시작했으나 대부분 정부의 소식을 일방적으로 전하는 관영ㆍ반관영 매체였다. 젠거가 무죄로 풀려나자 언론과 출판의 논조도 크게 바뀌기 시작했다. 자유로운 비판과 권리의식이 싹튼 것. 언론은 차조례ㆍ인지세법 등 주로 본국 정부의 식민지 경제착취를 보도, 불만을 고조시켰다. 미국 독립의 열망을 확산시켰다는 토머스 페인의 소책자 ‘상식’이 출간된 것도 젠거 재판 이후 보다 자유로워진 언론환경에서다. 젠거 재판 250년이 지난 1985년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8월4일을 ‘언론자유의 날’로 선포한 것도 미국사의 흐름을 결정적으로 돌렸다는 점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언론현실은 어지럽다. 과거 독재정권이 자행한 언론탄압에 대한 규명작업이 펼쳐지는 한편에서 청와대와 일부 언론사들의 ‘악의적 보도’와 ‘감정적 취재거부’ 논란이 한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