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부의 개혁과제중 가장 높은 점수를 받고 있는 분야로 금융구조조정이 꼽는 데 이견이 없다.은행불사의 신화를 종식시키고 종금, 리스, 보험, 투신 등 모든 업종에 걸쳐 부실을 과감히 도려냈다. 강도높은 금융구조조정으로 경제의 혈맥인 금융시스템을 어느정도 정상화시켜 경제위기극복을 위한 기반을 조성했고 대외신인도를 높여 조기에 외환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게 일반적인 평가다.
금감위는 98년 6월29일 BIS비율이 8%에 미달하는 12개 은행중 대동, 동화, 동남, 경기, 충청 등 5개은행을 정리한다고 발표했다. 은행에 대해 사망선고를 내린 이날의 조치는 우리경제사에 있어 일대 사건이었다. 칸막이식 영업과 정부의 보호라는 온실속에 안주해온 금융기관이 앞으로는 경쟁의 삭막한 들판에 홀로 서서 자신의 생존을 스스로 담보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선언한 날이다.
이날을 계기로 구조조정의 삭풍이 금융권을 휩쓸었다. 상업 한일은행의 합병 발표를 시작으로 하나 보람, 국민 장기신용은행이 합병의 대열에 동참했다. 정부의 강요와 스스로의 생존을 위한 모색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30개에 달하던 종금사는 지금은 14개로 줄어들었다. 25개 리스사중 10개가 사라지고 보험사 5곳이 문을 닫았다. 증권사 5개가 퇴출됐고 투신 2개사와 투신운용 5개사가 금융지도상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부실금융기관에 대한 정부의 적기시정조치와 거래 금융기관이 망할지 모른다는 고객들의 두려움이 경쟁력이 없는 금융기관을 무대에서 퇴장시킨 셈이다. 이에 따라 금융기관이나 고객들이 정부가 뒤를 봐줄 것이라는 판단아래 방만한 경영을 일삼고 고금리만 쫓아다니던 도덕적해이현상이 잦아들고, 자기책임아래 경영을 하며, 고객들도 거래금융기관을 선택하는 관행이 서서히 정착되고 있다.
금융구조조정은 기존의 관행과 의식구조자체를 변화시킨 작업이었다. 제일은행을 미국계 뉴브리지 캐피탈에 매각한 것은 금융구조조정과정에서 우리 정부와 국민들의 의식과 관행이 눈에 띄게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외국계은행의 국내지점 설치에도 인색하던 정부가 스스로 해외매각에 앞장섰고,국내기업의 소유권이 외국인에게 넘어가면 매국행위로 매도하던 분위기도 어느덧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IMF체제 아래서의 불가피한 선택이었지만 능동적으로 이를 받아들여 변신한 셈이다.
정부가 과감한 금융구조조정을 단행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국민들의 협조가 뒷받침 됐기 때문. 국민들은 금융구조조정을 위해 65조원이라는 막대한 재원을 부담했다. 성업공사를 통한 부실채권매입과 퇴출금융기관의 예금대지급금, 자본을 까먹은 금융기관의 증자대금 등으로 모두 42조4,000억원이 이미 투입됐다. 남은 돈은 추가적인 구조조정작업에 사용된다. 미국의 투자은행인 메릴린치는 65조원을 다쓰고도 추가로 25조~35조원의 자금이 구조조정비용으로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정부는 국민들의 협조를 끌어내기 위해 힘겨운 노력을 했다. 시비는 있었지만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퇴출대상을 투명하게 선정키 위해 노력했고 부실금융기관 경영진의 퇴진, 감자조치, 신탁재산에 대한 실적배당원칙의 관철노력 등 금융구조조정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도 만만치 않았다.
은행장과 임원들이 대부분 옷을 벗었고 6만5,000여명의 금융기관종사자들이 거리로 내몰리는 상황에서 IMF체제를 초래한 관치, 정치금융의 주역들은 자리를 보전하고 있다는 원성이 끊이지 않았다.
또 한남투신을 정리하면서 투자신탁의 실적배당원칙이 변질됐고 정치권과 지역감정에 묶여 지방은행을 제때 정리하지 못해 형평성시비가 지속된 것도 되새겨 봐야 할 대목이다.
은행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한 정부가 중소기업에 대한 저리자금지원을 강요하고 부실정리를 위해 이익을 내야할 은행에게 금리인하를 강제한 부문은 아직도 금융기관을 명령에 따라 정책을 수행하는 하부기관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실증한 행위로 신관치논란을 야기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최창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