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사람·돈·땅 모두 금값 “투자 발목”(경제를 살리자)

◎금리 인위적 인하 앞서 돈 제대로 돌게 해야/“툭하면 규제” 군림하는 공무원들도 문제어음만기 때만 되면 문턱이 닳도록 은행 등 금융기관을 찾아다니며 하소연 하지 않아도 되고 어쩌다 어렵사리 훈련시켜 놓은 기술자가 그만두겠다고 하면 밤늦게까지 설득하는 등 「살 떨리는」 일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박사장은 『왜 그리 바보처럼 제조업에 매달렸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박사장처럼 한국에서 제조업을 하는 사람을 가리켜 「곰바우」 또는 「애국자」라고 한다. 바보거나 애국심이 대단하지 않고서는 제조업을 하기 어렵다는 우리 현실을 빗대서 하는 말이다. 「사람, 돈, 땅.」 기업을 하는데 있어 어느 것 하나 없어서는 안되는 요인들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이들 모두가 다 금값이다. 대기업들은 그렇다치고 중소·중견업체 사장들의 경우 경영은 뒷전이고 사람과 돈을 구하러 다니다가 볼일 다 보는게 오늘의 현실이다. 이래가지고서야 기업의 경쟁력이 살아날 수 없다는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다. 구자학 전자산업진흥회장은 『수도권지역의 땅값이 살인적이라는 것은 모두 다 아는 사실이다. 생산시설용 부지확보도 문제지만 종업원들의 주차공간을 확보하지 않으면 사람구하기가 어려운게 더 큰 문제다. 공장건설비와 주차용부지비가 같이 들어가는 판에 경쟁력은 무슨 경쟁력이냐』고 우리 기업들의 고충을 대변한다. 구회장은 따라서 기업들을 기업하기 좋은 세계시장으로 내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무역기구(WTO) 출범으로 시장의 국경개념이 없어진 마당에 기업들을 국내에 붙잡아두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지적했다. 기업들은 수도권인구억제를 위한 편협된 정부의 시각이 기업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고 토로한다. 현대전자의 이천반도체공장확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현대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16메가D램에 이어 64메가D램 수요에 대비해 이천공장 증설에 필요한 규제완화를 통상산업부·건설교통부·환경부 등 관계부처에 수차례 건의했다. 현대는 환경오염이나 인구집중 등 모든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수차례에 걸친 요청 끝에 현대는 신청분(16만평)의 10%를 약간 넘는 1만8천평을 겨우 허가받았다. 정치적인 표가 달린 서민들의 주거안정을 위해서는 수백만평의 택지를 개발해 아파트를 공급하고 있는 주택정책과 앞뒤가 안 맞는 일이 산업입지정책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SKC가 미국에 필름공장을 지을 때 40만평의 부지를 거의 무상으로 공급하고 각종 세금을 감면해준 조지아주정부, 영국 웨일스에 공장을 짓고 있는 LG반도체에 대해 현지 공무원들이 도시락을 싸들고 출장을 나와 『무슨 애로사항이 없느냐』고 한 자세는 우리 정부가 배워야 할 대목이다. 그들은 말 그대로 시민의 심부름꾼(Civil Servant)인 것이다. 고금리에 대해서도 기업들은 이미 포기한 상태다. 기업들은 자금이 절대 부족한 상태에서 금리를 낮추는 것은 무리라는 현실을 인정하고 있다. 금리인하도 급히 꺼야 할 불이지만 돈을 돌게 하는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금융실명제로 「가진 자」들 사이에는 요즘 『애들에게 물려주면 뭐하나, 세금으로 다 떼일 텐데. 죽기 전에 다 써버리자』는 자조가 팽배해 있다. 이러니 돈이 돌리 없다. 대그룹의 한 자금담당임원은 『정부가 금리를 낮추겠다고 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시중자금사정이 더 나빠졌다』면서 『인위적인 금리인하보다는 투자환경을 활성화해 수출을 늘려 국내자금사정을 호전시키고 기업들이 자기 신용으로 외국돈을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하는게 금리인하에 더 효과적이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들을 세계시장으로 내보내 국내에서의 투자자금수요를 줄이는 것도 금리인하를 위한 좋은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기업인들은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경제장관들이나 대통령이 나서서 흘러간 유행가 같은 대책을 내놓기보다는 정부, 특히 공무원들이 기업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마음가짐을 갖는게 경제를 살릴 수 있는 묘약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하위직공무원에서 고급공무원까지 「경제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세가 있다면 법령이나 규칙에 얽매여 기업들의 하소연을 들어주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김희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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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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