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12월 24일] 채권단의 만만디

“참 답답합니다. 또 미뤄졌네요.” 최근 기자가 만난 C&그룹의 한 임원은 C&중공업의 채권단이 긴급자금 150억원 지원 결정을 두차례나 미룬 것에 대해 분을 삭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채권단이 기왕에 기업회생절차(워크아웃)를 밟기로 했으면 신속한 지원이 이뤄져야 회사가 정상화될 수 있다”며 “긴급자금 지원이 미뤄지면 해외에 발주해놓은 조선설비(플로팅 도크)를 인도 받지 못하고 협력 업체들의 경영난도 가중될 뿐”이라고 강조했다. 우리은행과 메리츠화재 등으로 구성된 C&중공업 채권단은 지난 19일 긴급자금 150억원 지원 결정을 29일로 연기했다. 9일에 이어 벌써 두번째다. 채권단이 자금배분 비율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며 자금지원 결정을 미루는 사이 C&중공업의 조선사업 추진은 원점으로 되돌아갔고 조선소 건설 재가동에 필요한 인력확보도 어려워졌다. 은행들이 이처럼 기업에 대한 대출에 몸을 사리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실제 한국은행이 리먼브러더스 파산 사태 이후 현재까지 시중 자금난을 해소하기 위해 금융기관들에 20조원 이상을 지원했지만 대부분 시중에 풀리지 않고 되돌아왔다. 은행들이 기업대출에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 “정부가 돈을 그렇게 집어넣어도 돈이 밑으로 흐르지 않는다”며 질타했지만 은행권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기업대출보다 담보가 확실한 가계대출에 더 열을 올리는 모양새다. 최근 기자가 만난 한 기업인은 “얼마 전 기업대출을 거절당한 은행으로부터 가계대출을 받아가라며 문자메시지가 왔다”며 “비 올 때 우산은 뺐지 말아야 하는 법인데 참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 물론 워크아웃 상황에 이르기까지 기업사정이 나빠진 것은 경영을 잘못해 채권단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는 기업에 1차적으로 책임이 있다. 만약 회사를 살려 근로자들의 일터를 지킬 수만 있다면 C&중공업은 경영권이라도 내놓아야 한다. 하지만 문제는 시간이다. 은행들이 주판알을 튕기느라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사이 전선을 지키고 있는 기업들은 하루가 다르게 쓰러져가고 있다. 병사가 죽은 후에 구급차를 보낸 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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