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출자제한 논쟁의 속내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와 재경부 사이에서 출자총액제한과 관련해 한차례 공방이 있었다. 출자총액제는 핵심적인 기업개혁과제 중의 하나로 그 동안 정부 내부에서는 물론 민간과 정부간에 많은 논의가 있었다. 출자총액제논쟁 속에는 거래질서의 확립이라는 이상과 경기활성화의 필요성이라는 현실 문제가 얽혀 있다. 공정거래질서를 확립해야 할 공정위가 원칙에 집착하게 마련이고, 기능이 보다 포괄적인 재경부는 현실에 대한 고려를 앞세우기 마련이다. 재경부가 총액출자제의 폐지에 가까운 보완책을 제시하면서 공격에 나선 명분도 투자활성화다. 실속없이 요란한 명분싸움 그러나 출자총액규제가 없어진다고 투자가 당장 살아난다는 보장은 없다. 출자총액제는 명분 싸움만 요란할 뿐이지 실제로는 이미 여러 가지 예외 조항들로 인해 기업들로서는 그다지 불편한 규제가 아니다. 핵심사업 또는 신기술개발 투자 등에는 아무런 출자제한이 없고, 부채비율 100%미만의 기업은 출자규제에서 졸업시킨다. 돈이 벌린다면 지옥에라도 가는 게 기업가라는 말도 있다. 지금은 금리도 싸고 투자에 대한 세제지원도 많다. 노동계의 파업이 심하긴 해도 과거에 비할바가 아니다. 정치적 불안감을 말하기도 하지만 지금처럼 기업인들이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때도 없었다. 따지자면 지금의 투자여건은 과거에 비해 매우 양호하다. 그럼에도 기업들은 돈을 쌓아놓고도 투자를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투자부진의 근본적인 원인은 기업이 돈을 벌 수 있는 투자대상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결국 기술개발 사업개발이 부진하다는 얘기다. 출자총액제를 포함한 그 이외의 이유들은 투자부진을 설명함에 있어 주변적인 변수들이다. 이런 구조를 모를 리 없는 정부 부처들이 논쟁을 벌이는 것은 좋게 말해 경기위축에 대한 책임의식의 발로지만 혹평을 한다면 면피적 발상에 불과하다. 이 같은 관점에서 두 부처의 논쟁 내용을 좀 더 들여다보자. 재경부는 총액출자제한제에 대해 보완책을 제시하면서 그 논거로 의결권승수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이 개념은 의결권을 소유권으로 나눈 수치로 수치가 낮을수록 지배구조가 건전한 기업이기 때문에 총액출자규제를 풀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자 공정위는 소유-지배권 간의 괴리이론으로 맞섰다. 재벌의 총수가 적은 지분으로 계열사에 대한 지배권을 많이 행사할수록 괴리가 커진다는 것이 주장의 골자다. 계산방식이 다르긴 하지만 결국 두 기관은 같은 얘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정부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 논의의 중심에 삼성그룹이 자리하게 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삼성그룹의 2002년도 연결재무제표상 부채비율은 101.3%이다. 정부의 입장을 감안해 100% 이상으로 유지했다는 얘기도 있는 터다. 어쨌든 삼성그룹은 머지않아 부채비율 100% 미만으로 떨어져 출자총액규제에서 졸업한다고 봐야 한다. 이에 대한 공정위의 입장은 한국 최대의 그룹기업이 떨어져 나가면 출자총액제 자체가 무의미해진다며 부채비율 낮추는 것만이 출자총액제의 도입목적이 아니라는 주장을 편다. 이는 제도를 위해서 규제를 존속시켜야 한다는 얘기이므로 시대착오적이다. 삼성그룹 졸업여부가 핵심 출자총액규제도 규제인 만큼 궁극적으로는 없애야 한다. 삼성은 한국의 대표적인 글로벌 기업이다. 잘하는 기업을 규제에서 졸업시키는 것은 다른 기업에 잘하도록 하는 자극이 된다는 점에서 경쟁의 원리에도 맞다. 두 보고서는 출자총액제한의 적정기준에 대해서는 논급을 하지 않았다. 공정위 보고서는 재벌기업 가운데 삼성의 괴리도가 가장 낮은 것으로 평가했고, 재경부 보고서는 부채비율 100%미만 기업의 출자규제 졸업조건을 살려두라고 건의했다. 삼성의 졸업 여부에 대해 결론 내는 것이 출자제한을 둘러싼 소모적인 논쟁을 줄이는 길일 듯 하다. <논설실장 imj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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