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잉사의 필립 콘디트 회장이 지난주 전격 사임한 배경에 대해 미국 언론들이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콘디트 회장의 고풍스럽고 호화로운 생활과 경영진 간의 갈등, 군수물자 수송과정의 담합 등 마치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그중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이 미 국방부(펜타곤)와 군수회사의 유착관계다.
미 공군이 계획하고 있는 공중급유기 계획은 180억 달러로, 한국 정부 한해 예산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다. 이 사업을 따내기 위해 보잉사 재무담당 임원이 국방부 조달본부의 여성 간부와 수백통의 이메일을 주고 받았다는 것이다. 이 펜타곤 간부는 공중급유기를 보잉에 발주한후 공무원을 그만두고 보잉사에 취직자리를 얻었다. 뉴욕타임스지에 따르면 보잉이 로비스트를 고용해 공중급유기 발주에 관한 컬럼을 월스트리트 저널지에 게재하도록 도와줬다고 한다. 뒤늦게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은 펜타곤은 공중급유기 발주를 원점으로 돌리겠다고 나왔다.
보잉과 펜타곤의 스토리를 단순한 흥미거리로 흘려보내기 어려운 점이 있다. 펜타곤의 수뇌부가 거의 군수산업에 종사했거나 든든한 인맥을 형성하고 있다.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군수회사 제너럴 다이내믹스의 계열사에서 이사를 지냈고, 폴 월포위츠 부장관은 노스롭 그루만에서 고문을, 제임스 로치 공군장관, 토머스 화이트 육군장관, 고등 잉글랜드 해군장관도 군수회사에서 중역을 지냈다.
미국에 `철의 트라이앵글`이라는 말이 있다. 펜타곤과 의회, 군수산업의 삼각관계의 입김이 막강하다는 뜻이다. 의회 의원들은 지역구에 공장을 유치해 일자리를 늘리고 정치자금 창구로 활용하고, 군수회사로서도 국방비가 늘어나야 매출이 늘어나는 상관관계가 있다.
보잉사 사태는 방대한 국방조달 시장에 미국 업체간의 경쟁관계에서 터진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미국 군수시장은 철저히 국내업체에 폐쇄적이고, 해외업체에는 문을 열지 않고 있다.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에 해당하는 차세대전투기 사업에서 미국은 영국에게만 조그만 물량을 나눠줬을 뿐이다.
미국 군수 산업은 대외적으로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미국과 마찰이 생길 때 군수산업을 설득해야 한다는 속설이 있다. 한국이 지난해 차세대전투기 사업에 미국업체를 선정한 직후에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가 한국 신용등급을 두단계 올리고, 중국이 미국의 통상압력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보잉사로 달려갔다는 얘기는 루머만 돌리기 어려운 대목이다.
<조영훈기자 dubbcho@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