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최고 신뢰도' 퇴색 자존심상처
무디스·S&P, 잇단 신용등급 하향
지난 70년대 이래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투자대상국 가운데 하나로 인식돼 온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신용도 2등 국가'로 전락함에 따라 가뜩이나 혼미한 일본의 정치ㆍ경제가 한층 강도높은 압력에 시달릴 것으로 전망된다.
무디스에 이어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라는 양대 국제 신용평가기관이 최근 몇 년새 잇달아 일본의 신용등급을 하향조정, 해외 투자가들 사이에서 확산되는 일본에 대한 불신을 공고히 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 재무성 장관은 23일 장기 국채의 금리가 1.3%까지 떨어졌는데도 신용등급을 낮춘 것은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야나기사와 하쿠오(柳澤伯夫) 금융담당 장관도 일본 경제 대한 S&P의 우려가 "불필요한 간섭"이라고 일축했다.
일본 엔화 및 외화표시 장기채권에 대해 이번에 S&P가 부과한 'AA+'나 무디스의 외화 채권에 대한 'Aa1'는 최상급 보다는 낮지만 높은 안정성이 인정되는 등급. 세계 2위 경제국으로 최고의 신뢰도를 인정받아 온 일본 입장에선 자존심에 입은 상처가 크다. 게다가 지난해 9월 무디스는 엔화표시 장기 국채 등급을 기존의 'Aa1'에서 'Aa2'로 낮춰 일본 신용도를 스페인ㆍ포르투갈과 같은 수준으로 격하시켰다.
일본에 대한 외국의 시각이 이처럼 부정적으로 바뀌는 이유는 막대한 정부 부채와 금융기관의 부실채권, 구조조정 지연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일본 정부는 경기 부양을 위해 대규모 국채를 발행, 정부 부채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 129%에 달하는 642조엔(5조5,000억달러)으로 부풀어 올라 재정에 압박을 받고 있는 실정. 게다가 정부의 경기 부양노력은 지난해 3ㆍ4분기 GDP 성장률 마이너스 0.6%라는 암울한 소식만을 가져와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을 불러왔다.
부실채권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는 점도 일본 경제에 대한 신용도 하락의 커다란 요인이다. S&P는 은행권의 부실채권이 공식 발표된 31조엔의 두 배에 달할 것이라며, 이로 인한 국내 신용 긴축 때문에 당분간 성장률이 2% 이하에 머물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가뜩이나 위기에 처한 모리 요시로(森喜朗) 총리는 주가 하락과 디플레 우려 고조, 성장률 하락 등 잇달아 터져나오는 국내 악재에 국제 신용도 하락까지 겹쳐 한층 강도높은 퇴진 압력을 받을 전망이다. 경기 둔화와 신용도 하락의 배경에는 모리 총리의 잇딴 실수와 내각 성립 이후 극심해 진 정치 불안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현재 사상 최악인 9%대에 머물고 있는 모리 총리에 대한 지지도가 이번 신용등급 하락을 계기로 한층 낮아질 것이라며, 오는 3월 총리 퇴진은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현재 모리 총리의 후임으로는 하시모로 류타로(橋本龍太郞) 행정개혁담당 장관와 자민당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모리파 회장 등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
신경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