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생활

[한국경제 복합불황 덫에 걸리나] 마트 반값할인에도 발길 뚝… 백화점 식품관은 떨이때만 반짝

■ 내수부진 어떻길래

대형마트 매출 3반기 연속 마이너스

골목상권 "가게 문여는 게 오히려 손해"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넉달 만에 반토막

경기침체의 골이 깊어지며 택시업계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13일 서울역 근처 택시정류장에 줄지어 길게 늘어선 택시들이 하염없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권욱기자

13일 오후 쇼핑하러 나온 시민들로 북적여야 할 서울 명동 거리가 한산하다. 문을 연 가게는 진열대를 밖으로 꺼내 호객행위에 나섰지만 행인들은 쉽사리 시선을 주지 않고 있다. /권욱기자

지난 12일 오후 서울 마포의 한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을 하루 앞둔 토요일인 만큼 미리 장을 보는 사람들로 북적여야 하지만 매장은 평일 오후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무더위가 찾아와 물놀이용품 코너도 차려졌지만 지나가던 이들은 눈길만 한번 줄 뿐 제품을 카트에 넣는 경우는 거의 없다. 주부 이정숙(50)씨는 "생필품 외에는 잘 사지 않는데다 할인행사를 해야만 살지 여부를 고민하게 됐다"며 "할인 표시가 붙은 상품들도 이제는 비싸다고 생각될 정도"라고 말했다.

해당 마트는 올 상반기 전사 기존점 기준으로 매출이 1.6% 감소하면서 지난해 상반기(-2.9%)와 하반기(-2.4%)에 이은 3반기 연속 역신장을 기록했다. 국내에서 마트 영업을 시작한 지 20년 만이다. 매출 부진을 털어내겠다며 최근 생필품 1,000여품목을 대대적으로 할인하고 나섰지만 아직은 집객 효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유통업계는 대형마트 매출 부진의 원인으로 전통시장 지원을 위한 의무휴업일 도입 등 정부의 영업규제를 꼽고 있지만 막상 전통시장은 반사효과가 전혀 없었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소비흐름이 아예 막혔기 때문이다. 서울 시내 대형마트가 모두 의무휴업에 들어간 13일 서울 강북구 숭인시장도 한산했다. 시장상인들은 정부가 골목상권 활성화를 위해 여러 정책을 내놓았지만 사정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청과가게를 운영하는 채지석(52)씨는 "인근에 대형마트 3곳이 있지만 정부가 대형마트 의무휴업을 도입한 후에도 매출은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며 "인위적으로 고객의 발길을 돌리게 할 것이 아니라 주차와 결제 등의 근본적인 편의시설에 대한 지원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정육점을 하는 김자영(43)씨는 "우리 가게에서 고기를 구입해본 고객들은 품질과 가격에서 대형마트보다 낫다고 얘기하지만 이를 마땅히 알릴 수단이 없다는 게 문제"라고 전했다. 상인연합회 차원에서 홍보전단지도 만들어봤지만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고 귀띔했다. 대형마트에 의무휴업을 도입하면 전통시장이 자연스레 활성화될 것이라는 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소비자들이 마트에서도 전통시장에서도 돈을 쓰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백화점을 이용하는 중산층 이상의 소비심리 역시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최고급 시계·보석 등의 연간매출이 매년 두자릿수 증가세를 보이는 등 상위 1%급의 VIP는 경기와 무관하게 돈을 쓰고 있다는 점이 확실하지만 그들보다 지갑이 얇은 중산층은 소비심리에 자물쇠를 채웠다. 서울 중구의 한 백화점에서 만난 주부 이미영(40)씨는 "예전에는 백화점에 오면 화장품도 쉽게 사고 액세서리도 하나씩 구입하고는 했지만 요즘에는 폐점 직전에 가끔 백화점을 찾는다"며 "이 시간에는 식품관 과일과 수산물 가격이 확 떨어지는데다 덤을 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골목상권이나 지하철 역사에 터를 잡은 소규모 가게도 얼어붙기는 마찬가지. 서울 중구에서 10년째 옷가게를 하는 박성민(32)씨가 느끼는 불안은 예년보다 심각한 수준이다. "예전에는 못해도 하루에 20만원씩 팔았지만 어제는 출근해서 밥만 먹고 들어갔다"며 "가게 나오는 게 더 손해일 때가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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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업계의 경우 시민들이 지갑을 닫아버리면서 불황의 늪에 빠졌다. 서울 반포동 고속터미널에서 만난 택시기사 최덕수(46)씨는 운전대를 잡은 13년간의 기억을 돌이켜봐도 "최근의 경기는 개인의 성실함만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며 "(경기침체가)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웬만해서는 소비를 줄이지 않는다는 교육과 의료 부문도 이제 경기침체의 영향권에 들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피아노 강습을 하는 김모(29)씨는 "학생 30명 정도를 가르치고 있는데 며칠 전 초등학생 5명이 한꺼번에 강습을 그만둔다고 통보해왔다"며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집에서는 예체능 수업부터 줄이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 모처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김모(58)씨도 "병원과 약국은 경기를 안 타는 분야였지만 요즘에는 지난해보다 10~20%가량 손님이 줄었다"고 전했다.

지방도 서울과 크게 다르지 않은 처지다. 수원에서 관광버스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강모(55)씨는 세월호 참사가 발목을 잡았다. 강씨는 "세월호 참사 여파로 적자폭이 계속 늘어나 조만간 버스 몇 대를 처분해야 할 상황에까지 처했다"며 "관광 성수기인 가을철까지 최대한 버텨보려고는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걱정이 크다"고 침통해 했다. 울산에서 일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이모(50)씨 역시 "몇 달간 손님이 눈에 띄게 줄었다"며 "소유하고 있는 건물에 입점해 겨우 버티고 있지만 조금 더 이 상태가 이어진다면 장사를 접어야 할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좀처럼 힘을 못 쓰는 경기에 부동산 시장도 허우적대고 있다. 전셋값이 매매 가격의 70%에 육박하면서 주택 구매를 고민하는 실수요자들은 늘고 있지만 침체된 내수경기 탓에 실구매로는 연결되지 않고 있다.

실제로 서울시 아파트 거래량은 3월 하루 평균 305.9건(이하 신고일 기준)으로 올 들어 고점을 찍었지만 이후 4월 284.6건, 5월 195.7건, 6월 172.9건으로 꾸준히 감소했다. 특히 이달 들어서는 하루 평균 167.3건으로 3월에 비해 반토막이 났다.

부동산 시장의 바로미터 역할을 하는 강남권 재건축 시장 역시 국지적 호재가 있는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투자수요가 뚝 끊겼다. 시장에서는 부동산 시장을 살리기 위해 정부가 내놓은 각종 대책들이 하루빨리 처리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1년 이상 처리가 지연된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폐지법안과 분양가상한제 폐지 관련 대책은 물론 지난달 발표한 2·26 후속조치도 하루빨리 처리돼야 한다"며 "경기위축 상황에서 정부대책의 현실화 여부는 향후 부동산 시장의 최대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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