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창의력 중시 “신바람내라” 멍석 펴줘/「부실」 인수 회생시킨 기업이 계열사 80%나「홍익사회」.
「널리 사회를 이롭게 한다」는 뜻으로 올해 재계 30위에 새로 진입한 신호그룹의 창업이념이다. 언뜻 막연하게 들린다. 하지만 주주와 임직원, 고객이 「더불어 잘 사는 사회」를 만들자는 의미로 창립이후 20년 동안 신호의 대표적인 기업문화로 임직원들의 가슴에 깊이 자리하고 있다.
기업문화는 기업이 목표를 달성하고 발전하기 위해서 환경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내부풍토를 조성하는 것이다. 또 기업구성원들이 함께 느낄 수 있는 유무형의 공유가치다. 따라서 기업의 경영활동에서 그 기업이 어떤 문화의 토대를 갖고 있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기업문화의 특성에 따라 조직 구성원들의 방향과 의미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신호의 「홍익사회」는 장기적으로 보다 넓은 인류애적 가치관으로 승화, 8천 신호가족을 한마음으로 묶는 중요한 가치가 되고 있다.
홍익사회의 좀 더 구체적인 의미는 창업자인 이순국 회장의 말에서 드러난다. 『사업을 시작할 때의 목표는 열심히 항구적으로 일할 수 있는 직장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기업은 영속해야 하고 모든 사람이 행복해야 그 조직이 오래가지 않겠는가 생각했지요. 결론은 모두가 보람을 갖고 고른 분배로 함께 잘 사는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니 우리나라 건국이념인 홍익이념 이었습니다. 홍익이념은 대한민국이 영속하기를 바라고 그 국민이 다같이 잘 살자는 염원이지요.』
이회장의 설명에서 알 수 있듯 홍익사회는 세가지 실천항목을 담고 있다. ▲기업의 영속성 ▲사회·국가 이익과의 일치 ▲기업이익의 공유다. 기업의 영속성은 사회에 지속적으로 기여하기 위해서는 우선 기업이 지속적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기업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죽거나 없어져서는 안된다는 기업생명체론과 통한다.
두번째 지적은 기업의 경영활동이 사회와 국가의 이익과 일치하는 선상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기업은 이윤추구를 목표로 한다. 그러나 그것이 사회나 국가이익에 반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끝으로 기업이익의 공유는 끊임없는 생산성향상과 원가절감으로 이익을 얻고, 이를 모두에게 환원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런 목표는 신호뿐 아니라 대부분의 기업들이 내세우는 것이다. 하지만 신호의 기업문화는 좀 다르다. 단순히 구호에 그치는게 아니라 행동으로 표현되고, 자연스럽게 사원들의 마음속에 공감대로 자리잡고 있는 행동문화다. 이를 대표하는 사례로는 부실기업 인수를 들 수 있다.
신호는 기업에도 사람처럼 생명이 있어 함부로 도산시킬 수 없다는 마음으로 쓰러져 가는 기업을 인수했다. 그룹의 모체인 삼성특수제지(현 신호제지) 역시 법정관리에서 출발했다. 현재 35개에 달하는 계열사 및 관계사 가운데 80%가 넘는 기업들이 부도로 쓰러졌거나 쓰러져가는 기업을 인수해 회생시킨 것이다. 기업은 영속돼야 한다는 경영자의 의지와 이를 문화로 정착시킨 신호의 특징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홍익사회를 구현하고 있는 또 한가지 예는 홍익복지기금 설립과 종업원집단지주제다. 이회장은 지난 87년 개인주식의 63%인 15만주와 10억원을 더해 30억원의 복지기금을 조성했다. 또 개인소유 주식을 계속 근로자 복지기금으로 출연하면서 종원원 집단지주제로 회사경영의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이회장은 전문경영인으로 남고 자신의 주식전액을 모두 종업원들에게 환원한다는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다. 기업이익을 사유화하지 않고 종업원과 주주 등에게 돌려주겠다는 기업이익의 공유성을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그룹 경영이념으로 까지 발전된 기업문화를 통해 신호는 지난 77년 창업 이후 20년만에 상장사 6개를 거느린 큰 기업으로 부상했다.
지난해 2조원의 매출을 기록했으며 올해 목표는 3조1천억원. 특히 신호는 오는 2001년 8조원의 매출을 달성해 재계 20위권에 진입한다는 「신호비전 2000」을 마련, 추진하고 있다. 전 사원의 의식개혁과 그룹 체질의 개선으로 2000년대 초우량기업으로 도약, 직원의 행복과 홍익사회를 구현한다는 신호의 새로운 비전이다. 이를위해 신호는 제지비중을 낮추는 대신 철강·건설·전자·물류 등 사업다각화와 구조조정 등을 통해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특히 그룹 전반에 흩어져 있는 계열기업군을 기능중심으로 통합,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 시킨다는 전략이다. ▲제지·철강을 중심으로 한 기간사업군 ▲전자· 통신의 첨단사업군 ▲정보통신·금융·무역·유통의 서비스 및 지원사업군 ▲건설·플랜트·엔지니어링의 엔지니어링사업군 ▲건축·레저 등 건설사업군으로 통합키로 했다. 이를통해 무역 1조5천억원, 제지 1조원, 철강 1조원, 건설 2조원, 전자 8천억원, 금융 8천억원, 물류 5천억원, 엔지니어링 4천억원 등 모두 8조원의 매출을 올린다는 것이다.
신호는 홍익사회의 구현과 비전2000 달성을 위해 임직원들의 복종과 희생을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은 자유로우며 항상 자기자신의 선택에 의해 행동해야 한다」는 사르트르의 말처럼 개인의 인격과 개성을 중시하고 있다. 각자의 인격과 개성이야말로 신호가 내세울 수 있는 또하나의 기업문화인 셈이다. 이는 「개인의 인격이 최대한 존중되며 각자의 창의가 최고로 발휘되는 명랑하고 보람된 직장을 만든다」는 사시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신바람나게 일하려면 인간의 속성이 잘 발현될 수 있는 인간중시의 경영풍토가 조성돼야 한다는 말이다. 이회장 또한 『조직이란 어디까지나 각자 다른 가치밑에서 기업활동을 조화·발전시키기 위한 수단이지 조직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각자의 인격과 개성을 존중해 각자의 창의가 최고로 발휘되고 그것을 조화·증폭시켜 나갈 수 있는 활력있는 조직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신호는 이를위해 매달 1일 이회장을 비롯해 3백명의 본사 관리직 사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사시합창 등 결의대회를 갖고 홍익사회의 의지를 재확인하고 있다. 2000년대 초일류기업의 도약을 위해 신호의 구성원들은 각자의 위치에 서서 「홍익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순국 회장 경영론/“기업은 독자생명체… 기업주는 관리자일뿐”
이순국 회장의 경영론은 ▲기업생명체론 ▲소유·경영분리론 ▲멍석론을 들 수 있다.
이는 20년동안 신호가 가야 할 길과 가지 말아야 할 길을 구분지어온 원칙이며, 특히 수많은 부실기업을 인수해 건강한 기업으로 되살릴 수 있었던 비결이기도 하다.
기업생명체론에 대해 이회장은 『기업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유기체로서 생명력을 갖고 있다』.
『기업을 죽이는 행위는 범죄행위다』는 말에서 확인된다.
기업을 죽이게 되면 그 기업은 물론 공존하는 주주도 종업원도 고객도 함께 피해를 본다는 의미로 이회장의 경영철학의 핵심이다.
따라서 이회장은 경영자는 기업체를 영속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책임을 져야한다고 강조한다.
신호의 부실기업 인수 배경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그는 부실기업의 「인수자」로 불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병든 사람을 치료해 주는 의사처럼 병든 기업을 잠시 맡아 정상화시키는 「관리자」이길 원한다.
『기업은 인수대상이 아니다. 인수라는 말은 소유를 전제로 하지만 언제까지 내가 갖고 있을 수는 없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목표로 인수가 아니라 관리차원에서 경영을 한다는 것이다. 인수는 하되 관리자 파견없이 기존사원을 그대로 두는 것이나 기업의 소유와 경영을 모두 사원들에게 넘기고 가족에게 상속하지 않겠다는 이회장의 지론도 이같은 소유경영분리론과 맥을 같이한다.
이회장의 부실기업 되살리기 비결은 멍석론으로 귀결된다.
『경영자는 멍석을 깔아주고 종업원은 거기서 신명나게 일할 수 있는 판을 벌려줄 때 기업이 발전한다.』 경영주는 종업원 개개인의 잠재된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자율적 책임과 경영권을 부여하면 구성원 스스로가 회사의 모든일에 앞장서서 모든 것을 해 나간다는 말이다.
◎신호그룹 로고 의미/안정·번영,끝없는 성장 상징
신호그룹의 상징인 그룹로고는 그룹명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신호의 사전적 의미는 「새로운 호수」. 호수에서는 고요하고 잔잔한 느낌이 떠오르듯 신호는 안정성을 우선으로 새로움이라는 변화를 축으로 하고 있다. 그룹로고도 안정과 번영, 끝없는 성장을 표현하고 있다. 삼각은 그룹의 안정성을 뜻하는 피라밋 형태와 끝없는 성장을 내포하고 있는 나무모양을 뜻한다.
로고 말고 신호의 상징으로 최근 새롭게 생긴 것이 있다. 전 사원이 모두 비슷한 스타일의 넥타이와 손수건을 갖고 있는 것. 지난 72년 이회장은 사업을 막 시작하면서 미국의 한 교포로부터 넥타이를 선물받았다. 「YCDNSOYA」라는 8개의 영문 알파벳들이 나열된 무늬의 넥타이였다. 선물을 준 사람에게 그 뜻을 물어보았다. 「You Can Do Nothing Sitting On Your Armchir」. 「편안한 의자에 앉아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뜻으로, 부지런히 일할 것을 강조한 영문 머리글자였다. 이회장은 자신이 나태해질 때 마다 이를 상기하며 오늘의 신호를 일궜다고 한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지금, 이번엔 이회장 자신이 전 임직원들에게 같은 내용의 알파벳을 담은 넥타이를 선물했다. 이회장이 수십년 동안 간직했던 그때의 마음가짐을 사원들도 한번쯤은 돼새겨 주길 바라며.<홍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