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기고] 신약개발은 '한 몸 이루기'


제약회사에 근무한 지 벌써 25년이 넘었다. 경험적인 결론은 신약개발이란 돈은 많이 들고 시간이 오래 걸리고 정말 너무나 어렵다. 한 마디로 약을 만드는 것은 과학을 넘어 예술이다. 전공분야가 다른 많은 사람들이 한 목적을 가지고 한 마음으로 열심히 같이 일해도 성공, 즉 식품의약품안전청(FDA)으로부터 신약으로 사용할 수 있는 허가를 받기가 쉽지 않다. 과학에 기초한 최상 결정을 내가 경험하고 깨달은 신약개발의 첫 번째 원리는 '한 몸 이루기'이다. 지난 1995년 회사 (Schering-Ploughㆍ셰링-플라우)에서 새 연구소를 짖고 외부 손님을 모신 심포지엄에서 발표 할 기회가 있었다. 과학세미나를 마칠 때 같이 일한 사람들을 꼭 소개하는 것이 예의로 돼 있기에 마지막 마무리를 과감하게 성서를 인용하기로 했다. 과제에 대한 결론을 마무리하고 끝에서 두 번째 슬라이드의 제목을 '성서에 따른 신약개발(Drug Discovery According to Bible)'이라 붙였다. 그리고 "몸은 한 지체뿐 아니라 여럿이니"라는 말을 인용해 내가 발표한 내용이 나 혼자 한 것이 아니라 '공동으로' '같이' 했다는 것을 강조했다.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각 분야가 다른 사람들이 일하지만 목적은 하나인 신약 개발인 것을 지칭했다. 그러기에 '몸 가운데 분쟁이 없이'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실수를 해도)' 다같이 공동 책임이고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성공을 해도) 모든 지체가(서로 시기하지 아니하고) 즐거워 한다'는 공동 협력에 초점을 맞췄다. 그리고 맨 마지막 슬라이드는 'OO의 몸'으로 해 연구 제목(OO)과 그 일에 참여한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다 적어 놓았다. 나의 과감한 시도는 예상보다 더 호응을 받았다. 교회와 사회를 분명히 구별하기 원하는 미국 사람들에게 그 선을 비즈니스의 원리(또 마침 새로 연구 총책임자로 부임한 부사장의 연구 원리가 '협력' 이었기에)에 부합한 성경구절을 자연스레 소개하며 없애 버렸다. 그리고 리셉션에서 부사장에게 물었다. "제가 성서를 인용한 것이 부사장님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는 않았습니까?" "전혀, 아주 멋있었습니다" 그때 자신을 얻은 나는 그 후 어디 가서 세미나를 하든지 이렇게 끝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지체는 약할 수도 있지만 지체의 직분을 감당하며 몸을 이뤄갈 때 몸이 효과적으로 움직여 창조적인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신약개발은 참여한 모든 공동체가 합력해 선을 이뤄내는 것이다. 나는 이 몸의 원리를 한 제약회사를 뛰어넘어 '대한민국' 전체로 연결돼야 신약개발이 가능하다고 1995년부터 나의 마지막 슬라이드를 보여주며 주장했다. 다국적제약사의 몸이 너무 크기에 국내 제약사나 어느 한 연구소가 맞서서 경쟁하기는 너무 큰 차이가 난다. 신약개발의 두 번째 원리는 오직 과학에 기초된(science-based) 최상의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신약개발은 비즈니스가 아니라 과학이다. 과학이 기초가 되지 않고는 비즈니스를 할 수가 없다. 물론 연구과제가 상용화 될 10~15년 후 의학적 니즈나 시장현황을 고려한 비즈니스 마인드도 매우 중요하며 연구 초기 단계부터 철저하게 기획되고 검증돼야 한다. 내가 멘토(mentor)로 삼은 위에 언급한 부사장이 나중에 셰링-플라우 연구소의 사장이 된 닥터 세실 피켓(Dr. Cecil Pickett)이다. 그는 미국 사회에서 주류인 백인이 아니라 흑인이다. 그의 리더십은 피부 색깔에서가 아니라 과학에서 나온다. 그의 과학에 근거한 질문이 송곳처럼 날카로웠다. 발표자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에 기초한 질문과 생각이 바로 리더십으로 연결된다. 과제 리뷰를 할 때 누구에게나 참석은 열려있었고 그의 방도 항상 열려 있었다. 신약개발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매 결정 점에서 어떤 최상의 결정을 내리는가이다. 한 땀 한 땀의 장인의 손이 품질 좋고 값비싼 운동복을 만들어내듯 최상의 한 결정 한 결정이 연결돼야 최고의 제품인 글로벌신약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여러 결정이 중요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결정은 비임상물질을 결정하는 것이다. 산·관·학·연 유기적 연계돼야 이 후보물질이 TPP(Target Product Profile)의 모든 요건을 뛰어넘는 똑똑한 물질이라면 다음 마일스톤을 잘 넘어갈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살아남지 못하는 물질이 된다. 그러기에 초기 단계에서 철저하게 미리 합의해 정해진 TPP에 따라 엄격하게 지켜야 한다. 외부 압력이나 연구자와의 인간적 관계를 넘어 오직 과학에 기초된 '퀵 윈 퀵 킬 패러다임(Quick win-quick kill paradigm)'으로 최상의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번 '범 부처 전주기 신약개발사업'은 그동안 유기적 연계 고리가 부족했던 정부ㆍ기업ㆍ학계ㆍ출연연구소 등 대한민국 신약개발의 모든 주역들이 한 몸이 돼 글로벌 시장을 타깃으로 하는 진정한 신약개발의 시작이라 생각된다. 오직 과학에 기초된 최상의 결정을 계속 내리면 글로벌 신약개발 국가로 도약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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