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IB 코피티션 생태계 구축하자] <2> 잘못 잡은 길

골드만삭스 따라하다간 餓死할판… 한국형 IB 방향성부터 잡아라

국내사, 자본시장법 시행후 IB매출 비중 갈수록 하락

채권발행·M&A자문 등 4대 먹거리 수익 근간 흔들

자기자본 투자 확 늘려 경쟁력 키울 새 길 모색해야


'1.70%(2009년)→1.43%(2014년)'

지난 5년간 국내 증권사의 투자은행(IB) 부문이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 추이다. 국내 증권사들은 너도나도 IB가 미래 경쟁력이라고 외치고 있지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오히려 후진했다. 특히 내로라하는 대형 증권사 IB의 수익 비중조차 감소해 국내 IB 시장에서 국내 증권사들의 영역이 점점 좁아질 것이라는 우려감이 크다.


7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증권사들의 IB 사업 강화를 위해 마련된 자본시장법이 시행된 지난 2009년 국내 증권사 41개사는 34조1,298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 가운데 IB(인수·주선과 매수·합병 수수료) 매출은 5,792억원으로 전체의 1.70%에 불과했다. 지난 3·4분기까지 매출은 39조4,449억원, IB 매출은 5,635억원을 기록해 IB 비중은 1.43%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특히 국내 5대 증권사의 IB 매출은 대부분 감소했다. 우리투자증권은 2009년 IB 수수료로 508억원을 벌어들였지만 지난해는 321억원으로 36.81%나 급감했고 삼성증권(-31.91%), 한국투자증권(-12.78%), KDB대우증권(-22.01%)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현대증권만 3.48% 소폭 올랐을 뿐이다.

외국계 증권사들의 수수료 수익은 반대로 많이 늘었다. 외국계 증권사 10곳은 2009년 270억원의 IB 매출을 기록했고 지난해에는 349억원을 벌었다. 이에 따라 IB 부문의 비중도 0.47%에서 3.55%로 늘어났다. 증권 업계의 한 관계자는 "골드만삭스나 모건스탠리가 국내에서 대형 IB 업무를 독차지하다시피 하는 것은 수십년 동안 쌓아온 노하우에다 우수한 인력집단, 글로벌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국내 증권사들도 장기적인 플랜을 갖고 지속적으로 투자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따져보면 주식자본시장(ECM), 채권자본시장(DCM), 인수합병(M&A) 자문, 대체투자 등 IB의 4대 주요 시장 모두 수익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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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전문가는 "ECM은 최근의 삼성 계열사 상장 외에는 이전이나 이후나 대형 딜이 없고 DCM은 0.01% 수수료를 가지고 싸우는 진흙탕 싸움이 돼버렸다"며 "M&A 자문은 외국계에 치이고 대체투자는 엄두를 내지 못해 결국 국내 IB가 돈 버는 네 가지 메커니즘이 다 붕괴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 번 내려간 수수료는 죽어도 다시 오르지 않는다는 게 시장의 미래가 암담한 이유"라고 덧붙였다.

IB 부문이 성장은 고사하고 오히려 위축된 이유는 뭘까. IB 사업에 대한 이해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브로커리지(중개수수료) 식의 접근법으로 수수료 인하 경쟁에만 나선 것이 부메랑이 돼 돌아온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국내 증권사들이 롤모델로 골드만삭스나 메릴린치를 벤치마킹한 것부터가 잘못된 시작이라는 분석이다.

한 IB 전문가는 "골드만삭스는 이 세상 모든 것에 투자하는 거대한 중개 플랫폼"이라며 "한국 증권사가 골드만삭스처럼 진정한 투자은행이 되려면 단순히 중개자로 그칠 게 아니라 리스크를 고객사 대신 짊어지고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골드만삭스는 1년 수익의 60%는 FICC(채권 및 통화, 상품) 부문에서 벌고 진짜 M&A 자문 등 IB 업무에서 벌고 있는 것은 20%도 채 되지 않는데 국내 대형 IB증권사들이 한국의 골드만삭스가 되겠다고 나서는 건 롤모델 선정부터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용린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은 "IB사업본부도 일반 증권사 리서치센터 정도의 산업 분석 능력이 있어야 새로운 딜을 발견할 수 있다"며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계속 면밀히 산업을 조사하고 선제적으로 M&A를 통한 구조조정이 필요한 기업을 찾아 나서 자기만의 컬러를 찾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IB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규모는 작더라도 자기자본투자(PI)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예컨대 기업공개(IPO)를 할 때도 PI 투자로 수익을 더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 증권사의 한 IB본부장은 "비상장사를 상장시키면서 단순 상장작업만 처리해주는 게 아니라 리스크를 판단하고 지분 투자도 적극적으로 해야 브로커리지 수익 이외에 PI 수익도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서울경제신문이 국내 IB 대표 3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중복응답)한 결과 투자 실패 부담(68%·중복응답)과 자기자본의 부족(42%)이 원인이라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 국내 대형 증권사의 한 IB 대표는 "국내 자본시장법은 기업금융업무와 PI 업무 간 차이니즈월(정보교류 차단장치) 적용이 의무화돼 있는데 획일적인 차이니즈월 규정으로 직접적으로 이해상충이 없는 투자도 할 수 없게 제한돼 있다"며 "가령 M&A 인수자문 또는 인수금융 대출 수행 등과 연계해 재무적투자자(FI)로 참여하거나 금융자문 수행시 유동화 전문 회사(SPC), 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PFV) 자본금 출자 등을 병행하는 경우 이해상충 소지가 미미한 투자도 딜 진행에 제약을 받는다"고 꼬집었다. /IB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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