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좌초된 3조짜리 주유소 불법행위 방지법

年 3조 기름 탈세 방지법, 주유소 입김에 펑크날 판

불법행위 막는 수급보고 전산화… 일부 주유소 반대에 지지부진

오히려 관련예산 줄어들기도


지난 6월 실형과 함께 96억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은 A씨는 '무자료 석유'를 파는 주유소에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행해왔다. 가짜석유, 불법 거래되는 면세유 등의 무자료 석유를 사들인 주유소들이 정상적인 경로로 석유제품을 구입한 것처럼 꾸며주는 대신 수수료를 챙긴 것이다.

이 같은 가짜석유, 무자료 거래, 면세유 전용과 유가보조금 비리 규모는 연 3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막기 위한 '주유소불법행위방지법'이 주유소 업계의 압박으로 좌초될 위기다.

정부와 국회는 가짜석유 유통, 유가보조금 비리 등의 불법을 근절할 수 있는 법안을 지난해 통과시켜놓고도 눈치 보기에 바쁜 모습이다.

10일 한국석유관리원에 따르면 국내 주유소의 수급보고 전산화 비율은 18%(약 2,200곳·7월 말 기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신용카드 POS 단말기 등을 통해 석유제품 입·출하량 등을 전산 시스템에 전송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춘 주유소가 전체의 5분의1에도 못 미친다는 이야기다.


주유소 수급보고 전산화율이 문제가 되는 것은 시중에 만연한 가짜석유 유통과 면세유 전용, 유가보조금 부정 방지와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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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대부분의 주유소는 직원이 직접 컴퓨터로 입력(64%)하거나 수기로 장부를 작성(18%)하는 등의 방식으로 수급현황을 보고하고 있다. 한 정유사 관계자는 "직접 컴퓨터로 입력하는 방식이나 수기 보고하는 방식으로는 무자료 거래를 통해 가짜석유를 팔더라도 가짜 세금계산서 등을 통해 얼마든지 수급현황을 조작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석유관리원은 올해 총 2억원을 들여 연말까지 주유소 500여곳의 전산화를 추가로 진행할 예정이다.

하지만 상황이 녹록지 않다.

일부 주유소가 이에 반대해 단체행동에 나서면서 국회와 정부까지 입장을 선회한 탓이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주유소 전산화를 추진한다는 내용이 담긴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사업법' 개정안을 시행했다. 하지만 한 업계 관계자는 "일부 주유소가 국회를 압박하면서 주유소 수급보고 전산화를 위한 예산이 오히려 깎였다"고 전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자원경제학회는 가짜석유 유통 규모와 무자료 거래, 유가보조금 부정 등이 벌어지는 규모가 3조원가량인 것으로 추정한 바 있다.

특히 조직적인 범죄로 발전하는 경우도 늘어나면서 소비자들이 피해를 보는 경우도 생긴다. 지난해 4월에는 2,000억원대 가짜석유를 만들어 전국에 유통한 20여명이 대전지방경찰청에 검거된 사례도 있다. 이들은 2009년부터 4년여간 솔벤트와 톨루엔 등을 섞은 가짜석유 1억2,300만ℓ를 전국에 유통했다. 대형 화학업체에서 사들인 솔벤트·톨루엔의 사용처를 확인하기 어렵게 하는 동시에 세금을 빼돌리기 위해 '○○건설' '△△산업' 등 유령회사 8곳을 세우기도 했다. 가짜석유를 사용한 차량은 엔진 손상 등의 피해를 보게 된다.

국내 전체 주유소의 수급보고 전산화에 드는 예산은 100억원가량으로 추정된다. POS 단말기에 간단한 소프트웨어를 설치하거나 POS 단말기를 갖추지 않은 주유소의 경우 POS 단말기 자체를 지원해준다. 이 작업이 완료될 경우 주유소 불법행위를 원천 차단할 수 있어 현재 정부의 '안심주유소' 사업을 별도로 진행할 필요도 없어진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주유소 업계의 부정을 방지하고 정부의 세수 확대를 위해 이른 시일 내에 전산화를 완료해야 한다"며 "관련 인력과 예산을 늘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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