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조피디의 Cinessay]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

모든 것과 바꾼 비밀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 비밀이 없는 사람은 추억도 인생도 없는 셈이다. 하지만, 비밀은 때로 내 발목을 잡는다. 완벽한 비밀은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꼭 알고 있는 비밀.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나의 비밀을 지켜주고 배려해주는 사람을 만나면 다행이지만 그 비밀을 이용하려는 사람을 만나면 비극이 생긴다. 영화 ‘더 리더-책읽어주는 남자’(2008년작)는 비밀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는 여인과 그 비밀을 지켜주려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영화의 배경은 1958년 서독. 소년 마이클은 열병으로 거리에서 쓰러진다. 우연히 이 모습을 본 한나(캐슬릿 윈슬러)는 소년을 돌봐주고 두 사람은 20년이라는 나이차를 뛰어넘는 사랑을 운명처럼 나눈다. 두 사람의 관계는 특별했다. 사랑을 나누기 전, 언제나 소년은 한나에게 책을 읽어주는거다. 한나는 소년이 책을 읽어주면 가장 행복해했다. 두사람은 여행도 가고 늘 함께 한다. 그러던 어느날, 전차 검표원이던 한나가 사무직으로 승진하고, 갑자기 한나는 사라진다. 당연히 소년의 충격은 크다. 소년은 진심으로 한나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몇 년 후, 법대생이 된 마이클은 법정에서 나치 전범으로 피고인석에 있는 한나를 본다. 한나가 왜 그 자리에 있을까? 마이클은 법정에서 한나에 대해 석연치 않았던 모든 것들을 퍼즐조각 맞추듯 알게 된다. 책을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책을 놓고 가도 읽지 않던 그녀, 식당에서 메뉴를 고르지 못하던 모습, 사무직으로 승진해도 좋아하지 않던 이유도 사무직은 글을 많이 써야했기 때문이었음을 마이클은 알게 되는 것이다. 자신을 급하게 떠난 것도 다른 일을 찾기 위해서였다. 법정에서도 한나는 필적대조를 거부함으로써 동료들의 모함대로 모든 죄를 뒤집어쓴다. 한나에 대한 복잡한 심정으로 괴로워하던 마이클은 몇 년후, 그녀를 위해 카세트 테입에 책읽기를 녹음해서 보내준다. 그 테입을 들으며 뒤늦게 한나는 글을 배우고 마침내 마이클에게 편지를 쓸 수 있게 된다. 글을 읽고 쓰면서부터 생기를 찾은 한나였지만, 두 사람은 또 어긋나고 출소를 앞둔 한나는 결국 자살을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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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처음 볼 때는 한나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니, 문맹이 무슨 그리 큰 비밀이라고 저렇게 자신의 모든 것과 바꿀까.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한나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사랑받지 못해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도 몰랐던 한나. 이 넓은 세상, 비빌 언덕 하나 없이 오로지 먹고살기 위해 일만 해야했던 스산한 삶..아마도 한나에게 ‘문맹’이란 그동안 살아오면서 겪었을 모든 아픔의 상징이었을거다. 누구에게나 ‘비밀’은 자존심이고 타인에게 이해받을 수 없는 자신만의 ‘특별한 이유’다. 우리는 마치 자신에게는 아무 비밀이 없는 것처럼 타인의 비밀을 약점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자신을 방어할 능력도, 주변사람도 없이 세상의 야박한 공격에 맥없이 무너진 한나. 범죄적 비밀을 감추고도 떵떵거리며 사는 사람도 많은데 사회적 약자인 한나에게는 ‘비밀’은 곧 ‘죽음’이었던거다. 인생이 다 타이밍이지만,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한 마이클을 만났을 때 고백했다면 그렇게까지 외롭지는 않았을텐데…. 인생은 언제나 사소한 감정과 선택으로 너무 멀리 엉뚱한 방향으로 내달리곤한다.

조휴정PD(KBS1라디오 ‘빅데이터로 보는 세상’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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