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기업이 끼어들 여지 전혀 없어
공정한 시장질서 위해 꾸준히 제도 혁신… 융자 아닌 투자 중심의 시스템 만들어…
젊은세대 도전의지·창업환경 북돋워야
"지난 1980년대 이후 생긴 젊은 벤처들이 '제2의 삼성'으로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해야 합니다. 이들을 위해 공정한 시장 질서를 만들고 창업의 물꼬를 터주는 데 발벗고 나서겠습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남민우(50·사진) 벤처기업협회장은 30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 시대를 여는 데는 지금의 벤처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이 필수"라며 "벤처의 재도약을 도모하는 데 협회의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지난 15년의 역사 동안 우리 벤처기업은 양과 질 모두 급성장했다"며 "매출 1,000억원을 돌파한 벤처기업 수가 300개를 넘고 총 매출만 60조원에 이르는 '재계 6위' 그룹으로서의 위상을 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사회의 화두로 떠오른 청년실업 해소뿐 아니라 우리 경제의 향후 성장을 이끄는 '신성장동력'으로 벤처의 존재감이 점차 강조되고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이와 관련, 남 회장은 "벤처기업이 우리사회에서 신뢰와 존경을 받는 경제활동 주체로 인정받고 향후 지속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을 조성하기 위한 지원책을 이끌어내는 데 주력하겠다"고 힘줘 말했다.
2월29일 열린 벤처기업협회 총회에서 남 회장은 기존에 협회를 이끌던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대표와 함께 협회 공동회장에 취임했다. 그는 1993년 다산기연(현 다산네트웍스)를 창업한 벤처1세대다. 2001년부터 벤처기업협회 이사와 부회장을 맡아왔고 글로벌중견벤처포럼과 한국청년기업가정신재단의 출범을 주도하는 등 벤처업계 발전에 헌신해온 그의 기여를 생각하면 다소 늦은 감이 없지 않다.
남 회장은 "최근 벤처기업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시점에서 막중한 임무를 맡게 돼 어깨가 무겁다"면서도 "그간 협회에서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온 황 회장과 함께 업계 발전을 위한 과제를 하나씩 실천해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이를 위해 남 회장은 벤처기업이 자연스럽게 중견기업, 나아가 대기업으로 커갈 수 있는 바람직한 성장 사이클을 만드는 게 가장 시급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사람이 태어나 유아기를 거쳐 중년ㆍ장년이 되고 나중에 죽음을 맞는데 이는 벤처기업도 마찬가지"라며 "경쟁 속에서 뛰어난 역량을 가진 곳은 대기업이 되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국내 기업 생태계는 그렇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남 회장은 "현재 우리나라 50대 기업 가운데 1980년대 이후 창업한 곳이 몇 군데나 되느냐"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50대 대기업군을 뜯어보면 30년 사이에 새롭게 생긴 곳을 찾아보기 어렵죠.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 같은 성공사례가 즐비한 미국과는 정반대입니다."
창업을 장려하는 '기업가 정신'을 강조하고는 있지만 정작 국내 경제를 주름잡는 산업계의 주역들 대부분이 '2세 경영인'으로만 채워진 현 상황은 젊은 세대의 도전 정신을 독려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분석이다. 이유가 무엇일까. 남 회장은 "큰 나무가 모든 것을 다 차지하고 있으니 밑의 나무가 클 수 없다"며 벤처기업의 성장에 필수적인 시장의 공정한 룰이 갖춰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대기업과의 '갑을'관계 속에서 직접 설움도 겪어본 만큼 남 회장의 주장은 단호했다. "정부 조달을 포함해 우리 기업들이 성장 기반으로 삼아야 할 국내 시장이 대기업 위주로만 흘러가고 신생기업이 끼어들 여지는 전혀 없다"는 것이다. 벤처기업의 75%가 대기업을 포함한 타 업체와의 거래로 매출을 올리는 기업 간 거래(B2B) 기업인 만큼 '벤처기업의 경쟁력은 곧 대기업의 경쟁력'이라는 공감대를 바탕으로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는 말이다.
남 회장은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는 소프트웨어진흥법 개정안처럼 올바른 시장 질서 구축을 위한 혁신이 꾸준히 일어나야 한다"고 제시했다. 40억원 이하 규모의 공공정보화 사업에서 대기업 계열사의 참여를 배제하는 것이 이 법의 골자다. 그는 또 "궁극적으로는 대기업과의 거래에서 대금지급과 입찰, 유지보수율에 대한 부분을 담은 실질적인 가이드라인이 제정돼야 할 것"이라며 이를 위해 협회 차원에서도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약속했다.
최근 화두로 떠오른 청년창업 활성화를 위한 제언도 이어졌다. 남 회장은 단순히 창업자 수를 늘리는 대책으로는 건강한 벤처 생태계 구축이 힘들다고 지적했다. 그는 "생계형 창업에 매달려봤자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뛰어난 기업이 몇 군데나 나올 수 있겠냐"며 "똑똑한 창업자를 양성해 '창업의 질'을 올리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하지만 정작 이같이 뛰어난 인재들은 창업보다 고시에 매달리고 있다며 남 회장은 안타까워했다. 그는 "실업난 해소와 산업계의 혁신과 같은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가혹한 현실이 젊은이들의 창업 의지를 꺾고 있다"고 꼬집었다. 뛰어난 아이템을 가지고 창업해도 한번 실패하면 '융자의 덫'에 걸려 재기가 불가능하다 보니 창업을 기피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 최근 연대보증제 개선 등 정부가 내놓은 보완책에 대해 그는 "너무 초보적이고 소극적인 수준"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개인사업자에 대한 연대보증제는 폐지됐지만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부분은 그대로 유지되는 점, 회생절차 과정에서 주 채무가 조정되면 연대보증채무도 동일하게 조정하는 부종성의 원칙이 도입됐지만 이는 지금까지 이어져왔던 행정상의 착오를 고치는 수준으로 정부가 말하는 연대보증 '해소'라는 말에는 한참 못 미친다는 설명이다.
남 회장은 오히려 초기 기업을 위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융자가 아닌 투자 중심의 벤처시스템이 정착돼야 한다"는 것.
"3~4번 실패하다 다섯번째에 성공하는 것이 일반적인 벤처기업입니다. 이들이 실패 경험을 발판 삼아 끊임없이 도전하는 데는 기업의 가능성을 보고 지원하는 투자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게 필수적이죠."
지난해 한국기업가정신재단을 통해 한국벤처투자와 공동으로 엔젤투자매칭펀드를 조성하고 협회 차원에서 투자자와 벤처기업을 연결하는 '벤처7일장터'를 개최하는 것도 이 같은 생각에서다. 남 회장은 "엔젤투자는 기술과 아이디어 하나만 믿고 창업한 젊은 CEO에게 큰 힘이 된다"며 "과거에 비해 엔젤투자가 거의 사라진 상황에서 선도벤처인들이 엔젤로 활동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평했다.
이와 관련해 협회는 엔젤투자자에 대한 소득공제 비율확대와 제도일몰제 연장 등 엔젤투자 확대를 위한 제도개선을 올해 주력과제로 삼고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아울러 회수시장이 활성화되도록 정부의 역할을 강화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남 회장은 "코스닥 기업 중 벤처기업이 상장하는 데 걸리는 기간은 평균 9.3년"이라며 "대부분 기업공개(IPO)에 의지하는 국내 회수시장의 특성상 투자자를 유인하기에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전체 회수 건수 중 비중이 1.6%에 불과한 인수합병(M&A)을 독려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정부 차원에서 M&A 거래소를 만들고 시장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틀을 갖춰야 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노력은 벤처캐피털의 초기기업 투자 비중을 늘리는 데도 도움을 줄 것이라고 남 회장은 기대하고 있다. 그는 "소액에 머무르는 엔젤투자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벤처캐피털"이라며 "IPO 이전에 자금 회수가 가능한 세컨더리 펀드 등을 조성해 만일의 유동성 악화를 지원할 수 있게 하는 조치도 필요하다"고 정책 제언을 했다.
이와 함께 남 회장은 벤처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서는 벤처기업 스스로의 노력도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벤처는 기술중심 중소기업의 대표주자로서 자체 역량 개발에 주력해야 한다"며 "이는 시장을 주도하는 성공한 벤처기업들의 특징"이라고 언급했다.
특히 이렇게 갖춘 우수한 기술력은 글로벌 시장에서 국내 벤처가 활약하는 데 필수 요인이라는 게 남 회장의 벤처관이다. 그는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 없을 정도의 기술을 갖춘 기업들이 좁은 국내 시장에서 과당경쟁에 시달리는 게 지금의 현실"이라며 적극적인 해외 시장 개척으로 성장을 도모해야 한다고 말을 이었다.
또 남 회장은 "앞으로는 한정된 자원을 투입해 보다 큰 성과를 내는 기업군을 중점지원하는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고 제안했다. 국내 산업계의 '혁신'을 선도하는 벤처기업이 중소기업 지원책의 핵심이 돼야 한다는 것. 그는 "두려움 없는 창업환경을 만드는 것을 포함해 벤처기업 경영에 걸림돌이 없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주문했다.
이를 위해 남 회장은 올해 벤처기업 담당 기관인 중소기업청뿐 아니라 경제 및 산업계 전반을 관장하는 기획재정부와 지식경제부 등 정부 당국과의 스킨십을 확대하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단순히 벤처기업용 단기 지원책을 만드는 것에 집중하기보다 장기적인 국가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차원에서 올바른 벤처 생태계의 기틀을 쌓는 데 역량을 쏟겠다는 의미다.
마지막으로 남 회장은 "우리 벤처는 한국 경제가 외환위기를 조기졸업하고 성장과 정체를 거듭해온 역동의 시기를 함께 해왔다"며 "국내 산업계의 미래를 이끄는 주인공으로서 위상을 다질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비전을 밝혔다.
인터넷 강국 만드는 데 큰 역할 ■ 다산네트웍스는 지난 1993년 남민우 대표가 창립한 다산네트웍스(당시 다산기연)는 국내 1위의 네트워크 통신장비 전문업체다. 현재 국내에 구축된 초고속 인터넷망의 40%에는 이 회사가 만든 통신장비가 들어가 있다. 특히 2000년에는 세계 최초로 리눅스 기반의 라우터를 상용화해 지금의 '인터넷 강국'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외산이 판치던 국내 인터넷 장비 시장의 상당 부분을 국산화했다는 사실은 지금까지도 업계에서 회자된다. 남 대표는 1998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인터넷을 통한 산업계의 격변을 직접 체험하고 이를 주요 사업 아이템으로 낙점했다. 그는 "당시 금융위기로 어려웠던 국내와 정반대로 미국은 인터넷 신경제의 도래로 최고의 호황을 누렸다"며 "지금은 굴지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시스코의 성공사례를 보고 '이거다' 싶어 통신 장비인 라우터 생산에 나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다산네트웍스는 모바일 백홀 등 무선 네트워크 솔루션과 인터넷(IP) 셋톱박스와 전화기, 무선랜 장비 등 다양한 장비를 개발하며 업계 선두로 부상한다. 2009년에는 일본에 진출해 2010년 한해 현지에서만 65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며 창사 이래 최대 매출(1,939억원)을 달성했다. 올해 다산네트웍스의 목표는 네트워크통합(NI)과 시스템통합(SI) 시장에서 입지를 다지는 것. 남 대표는 "그동안 KT와 SK텔레콤 등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와의 거래에만 주력해왔는데 이제는 일반 기업과 공공기관 대상 NI와 SI시장을 공략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다산네트웍스는 지난해 기업공공시장 소프트웨어 1위 업체인 핸디소프트를 인수하고 보안솔루션 전문기업 퓨처시스템에 투자하는 등 내부 역량 강화에 주력해왔다. 남 대표는 "라우터와 스위치 등 다산네트워크의 주력 하드웨어에 보안과 소프트웨어를 합친 통합 솔루션을 갖춘 셈"이라며 "뛰어난 기술력을 갖춘 토종 업체들의 연합군을 만들어 HP와 오라클 같은 공룡 외산업체와 맞서겠다는 전략"이라고 복안을 털어놓았다. 해외 매출 확대에도 박차를 가한다. 19일 중국 선전 지역에 설립한 합작법인 '차산 네트웍스'를 통해 오는 3·4분기부터 현지 업체를 대상으로 자체 개발한 네트워크 솔루션을 판매할 계획이다. 일본에서는 최근 현지 통신사인 NTT서일본에 홈미디어 기기인 스마트TV박스를 공급하며 사업의 외연을 넓혔다. 남 대표는 "지난해 새로운 시장 공략을 위해 대규모의 투자를 단행했다"며 "올해부터 국내외에서 본격적인 성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약력 ▦1962년 전북 익산 ▦1984년 서울대 기계공학과 졸업 ▦1993년 다산기연(현 다산네트웍스) 창업 ▦2000년 다산네트웍스 코스닥 등록 ▦2001~2012년 벤처기업협회 이사, 부회장 ▦2004~2006년 한민족글로벌 벤처네트워크(INKE) 의장 ▦2007~2011년 코스닥 상장위원회 위원 ▦2010년~ 글로벌중견벤처포럼 의장, 동반성장위원회 위원 ▦2011년~ 한국청년기업가정신재단 이사 ▦2012년~ 벤처기업협회 공동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