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불황여파 해묵은 갈등 골 깊어져

제조-유통업체 마진전쟁<br>소비자이익 내세워 대형할인점등 '저가' 요구<br>영세업체들은 울며 겨자먹기식 비용 떠안아

지난달 초 납품가격을 둘러싼 외국계 할인점 까르푸와의 갈등 끝에 100여종에 달하는 식품 및 생활용품을 전량 철수시킨 CJ의 결정에 대해 식품업계는 공감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한 중견 식품업체 관계자는 “CJ 정도 규모가 있는 회사에서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대형 유통사와의 관계에서 제조업체는 당하기만 한다”고 말했다. 풀무원에 이어 CJ가 까르푸에서 제품철수라는 극한 대응에 나서면서 대형 유통사와 납품 제조업체간의 해묵은 납품가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이래 원부자재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등 경영상황이 악화됨에 따라 제조업체들은 할인점의 저가 마케팅에 따른 비용부담을 더이상 감당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하지만 할인점측은 장기불황에 따른 매출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할인공세에 박차를 가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또 할인판매가 거의 상설화되면서 한번 내린 가격을 다시 올리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올초 풀무원과의 마찰을 무마시키자마자 CJ의 제품철수라는 제2의 갈등이 불거진 까르푸의 한 관계자는 “납품업체의 가격인상 요구도 이해는 되지만 할인점의 경쟁력은 박리다매”라며 “할인점의 일방적인 부당 요구는 많이 시정됐고 계약에 의한 경품비용 분담 등은 공정거래법상 위법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소비자 이익’이라는 논리를 앞세운 대형 할인점의 납품가 인하 압력은 유통가의 일상으로 자리잡은 ‘고질적 횡포’로 인식되고 있다. 권장소비자가격이 무색한 덤핑판매와 제품 하나를 덤으로 얹어주는 ‘원플러스원’ 행사 등 각종 저가공세는 납품업체들 입장에서는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강요된 판촉수단인 경우가 대부분.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같은 제품을 싼 가격에 살 수 있어 좋지만 그 비용부담을 떠안아야 하는 납품업체 입장에서는 고역이 이만저만 아니다. 한 식품사 관계자는 “그래도 버틸 수 있는 규모와 브랜드파워를 갖춘 CJ나 ‘대형 제품’이 있는 회사는 낫다”며 “제품 수는 많은데 매출은 그저 그런 업체는 할인점의 무리한 요구에도 큰소리 한번 내기 힘들다”고 말한다. 할인점의 횡포는 저가 판촉행사에만 그치지 않는다. 한 식품사의 영업담당자는 “할인점 재고조사 결과 발생한 30만원 상당의 손실보전을 떠안으라는 요구를 거부하자 매장 바이어 담당이 제품발주 자체를 중단하고 진열도 대폭 축소시켜버렸다”고 하소연했다. 일부 매장에서는 납품업체의 판촉행사에 특정 여사원을 보내라는 은근한 압력을 가하는 구태도 여전히 존재한다. 백화점의 ‘큰소리’도 여전하다. 국내 의류사의 경우 많게는 40%에 달하는 백화점 입점수수료에 더해 백화점카드 고객에게 제공되는 5% 할인서비스와 철마다 여는 할인행사 부담까지 안아야 한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데 따른 양자간 갈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오랜 불황으로 업체들마다 경영상태가 악화되자 그 골은 한층 깊어가고 있다. 한편 유통사와 납품업체간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도 어떤 형태로든 메스를 가할 전망이다. 옥화영 경쟁촉진과장은 “납품업체의 거래실태 조사에 돌입한 만큼 유통 및 제조업 부문의 납품업체에 대한 불공정거래 관행 방지를 위한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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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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