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윤이 흑21로 받는 것을 확인하고서 이창호는 더 이상 손을 쓰지 않고 실전보의 백22로 손을 돌렸다. "현명한 처사입니다. 이창호바둑의 진수가 엿보인 장면입니다."(윤현석) 흑이 21로 받았기 때문에 우하귀에는 참고도1의 백1 이하 5로 패를 내자는 수단이 남게 되었다. 나중에 주변의 흑이 더욱 튼튼하게 된 다음에는 흑이 실전보의 21로 받아준다는 보장이 없다. 그런데 당장 실전보의 백22로 두지 않고 패를 내는 것은 만약에 백이 패를 지게 되면 공연히 건드려서 흑진을 크게 굳혀주는 결과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이창호는 그 패를 보류한 것이었다. "이런 감각은 아마추어들이 꼭 기억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수가 있다고 해서 무작정 그것을 결행하는 것은 경솔한 일이지요."(윤현석) 수가 있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러니까 적진의 한복판에 결정적인 허점이 있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짐짓 모르는 체하며 조용히 때가 무르익기를 기다리는 이 자세. 이것이 이창호바둑의 진수라는 것이 윤현석의 이야기였다. 백26으로 좁게 지킨 것은 우세를 확신하고 자중한 것. 지금은 형세에 관계 없이 이렇게 지키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좌변과 하변에 흑의 병력이 있는 상태이므로 이렇게 지켜야 안전하다. 흑이 33으로 수비한 것 역시 정수였다. 참고도2의 흑1로 버티고도 싶지만 백2가 놓이면 하변이 부서지므로 흑이 견디기 어렵다. 백34로 드디어 움직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