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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회장이 법정에 서면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다. 계열사 자금 수백억 원을 빼돌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재계와 법조계, 언론의 관심이 재판부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는 지난 3월 첫 공판이 시작된 이래 많게는 일주일에 3번씩 오전ㆍ오후 내내 공판을 여는 집중 심리 방식을 택해 재판 속도를 높였다. 재판부는 또한 검찰이 제시한 1,000개 증거를 4개의 주요 공소 사실 별로 분류해 70여 개의 핵심 증거로 추리게 했다.
그렇다고 증거를 띄엄띄엄 본 것이 아니다. 수 차례의 서증조사를 거쳐 모든 증거를 꼼꼼히 살폈다. 마치 '집중과 선택' 전략으로 재판에 임하는 듯한 모습이다.
이런 전략의 배경에는 재판부의 수장인 이원범(47ㆍ연수원20기ㆍ사진) 부장판사의 스타일이 한 몫을 했다. 이 부장판사는 철저한 공판중심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방대한 증거를 빠짐없이 검토한 것은 물론 혼동이 있을 수 있는 사실관계는 재판부가 직접 도표로 정리해 검찰, 변호인과 확인 작업을 거친다.
공판에 집중해 판결까지 신속하게 진행한다는 것이 21부의 입장이지만, 이들이 처한 상황은 녹록하지 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부 중에서 선거 및 부패 관련 재판을 맡고 있는 21부는 SK 사건 외에도 여러 굵직한 재판을 맡고 있다. 지난해 10ㆍ26 재보선 당시 선관위 홈페이지를 디도스(DDosㆍ분산서비스거부) 공격한 혐의를 받고 있는 공모씨의 재판도 21부 심리로 이뤄지고 있다.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등 정치권에 대한 전방위 로비를 벌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국철 SLS회장 재판 역시 21부가 맡았다. 하나 같이 재판부의 결정에 관심이 쏠린 사건들이다. 며칠 전 끝난 4ㆍ11총선의 선거 사범이나, 정권 말 정치권 부패 혐의자가 쏟아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21부는 앞으로 더 바빠질 가능성이 크다.
이 부장판사는 대구 영남고와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1988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94년 서울지법 의정부 지원에서 판사 생활을 시작했으며 대구고법과 서울고법 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배석판사인 이성율 판사는 연수원 35기, 김도현 판사는 연수원 36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