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미경제의 두가지 유령

그러나 많은 경험을 해온 경제학자인 나로서는 이같은 말에 동의할 수 없다. 몇몇 오래된 문제들이 사라졌지만 동시에 새로운 문제들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현재 미국에서는 고객들의 예금인출 사태로 은행이 문을 닫는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예금주들이 원금을 떼일 염려는 없다. 80년대 미국에서는 많은 저축대부조합(S&L)들이 파산했다. 그러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시대 이래 은행예금에 대한 정부의 보증으로 고객의 예금이 보호됐으며 지난 80년대의 부동산 대출 급증에 따른 심각한 버블에도 불구하고 불황이 닥치지는 않았다. 몇몇 사기꾼들이 감옥에 갔고 수많은 은행 주식 보유자들이 투자자금을 날리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87년10월 월스트리트의 증시 붕괴에도 불구하고 82~90년중 미국의 전체적인 실질 소득은 꾸준히 증가해 왔다. 은행예금에 대한 보증제도는 매우 유용한 장치였다. 그러나 미국은 무분별한 금융인들이 정부의 보증제도를 악용하지 못하도록 새로운 규제와 감시가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비윤리적인 은행 담당자들은 위험한 투자의 부담을 져야 할 사람이 자신들이 아니라 납세자들이라는 점을 악용해 위험한 대출을 남발하고 있다. 나는 현재 월스트리트의 호황이 일종의 투기적인 장세라는 걱정을 하고 있다. 강세장을 나타내는 「불」(BULL)과 거품을 나타내는 「버블」(BUBBLE)이 똑같은 B로 시작한다. 일본은 80년대 부동산과 주식 가격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심지어 87년10월의 세계적인 증시 폭락도 일본의 토지와 주가 버블을 깨뜨리지 못했다. 그러나 90년 거래 첫날부터 버블이 깨지기 시작했다. 이후 지금까지 일본의 주가와 지가는 진정한 의미의 회복세를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보다 중요한 것은 10년동안 일본경제가 깊은 슬럼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의 금융감독기관들이 일본은행과 보험회사의 파산을 외면했더라면 현재 일본에서는 지난 29~33년 미국이 경험한 대공황이 재현되고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미국경제의 규모가 엄청나게 큰데다 경제상황이 너무 좋은 만큼 월 스트리트가 재앙을 맞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경제사가들이라면 『그런 말은 믿지 말라』고 충고할 것이다. 경제규모가 크다고 해서 망하지 않는 나라는 이 세상에 없다. 외국투자가들이 다우존스지수가 폭락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느끼는 순간 미국에 유입된 수천억달러의 자금은 급속히 빠져나갈 수 있다. 또 폭락에 대한 두려움은 또다른 폭락을 불러오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우리는 역사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그러나 역사는 똑같은 형태로 반복되지 않는다. 주식과 채권가격의 지속적인 하락은 반드시 미국경제의 침체를 불러온다. 또 미국이 감기에 걸리면 수많은 외국에 독감이 퍼지게 마련이다. 불황과 대공황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만약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33년에 했던 일을 허버트 후버가 30년에 실행했다면, 또 앨런 그린스펀의장이 99년 세계적인 금융위기를 맞아 했던 정책들을 30년에 적용했더라면 불황의 기간을 줄이고 대공황까지 몰고가지 않았을 것이다. 이같은 나의 주장은 일본의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일본 중앙은행과 대장성 관료들의 이론과 행동에는 적잖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외국전문가들은 일본정부가 버블 이후 심각한 슬럼프를 처리하는데 너무나 소극적이고 때늦게 대응하고 있다며 비판하고 있다. 미국의 고질적인 국제수지적자로 인해 외국인들의 미국내 자산 보유규모가 눈덩이 처럼 불어나고 있는 것도 걱정거리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대부분의 외국인 소유 자산이 미국내에 존재하고 달러화로 표시돼 있다는 사실이다. 만일 미국경제에 공황이 불어닥쳐 투자자들이 그들의 자산을 엔화나 유로화로 바꾸기 위해 자산정리에 나선다면 미 달러화 가치가 폭락하겠지만 이로인해 어느정도까지는 수출을 자극하는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적절하지 않은 시기에, 또 지나치게 오랜 기간동안 긴축정책을 실시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만일 국제통화기금이 미국정부에 이같은 정책을 지시하는 상황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정말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고통을 참아라. 불황으로 인한 고통을 받아들여라. 이것이 멕시코·한국·브라질이 했던 일이다. 이는 또 미국이 국내외 통화매니저들로부터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경제학자로서 나는 언제나 무엇에 대해선가 걱정한다. 이것이 나의 의무이자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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