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특파원 칼럼] 속설

병술년(丙戌年) 한 해가 저무는 요즘 베이징은 매우 춥다. 한낮 수은주가 영하 8도까지 떨어졌던 지난주 토요일 베이징 시내의 한 예식장. 개띠해 쌍춘년(雙春年)에 결혼하면 행운이 깃들 것이라는 기대로 가득찬 신부들은 얄팍한 웨딩드레스 차림에 부들부들 떨면서도 마냥 즐거운 표정이다. 반대로 두툼한 외투를 걸친 노처녀 하객들은 추위에 떠는 신부가 그저 부럽기만 한 눈치였다. 예년 같으면 결혼시즌이 마감됐을 시기인데도 여전히 결혼식장에는 신랑ㆍ신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예식장 관계자들은 지난해 겨울에 비해 결혼식이 2~3배는 족히 넘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개띠해 쌍춘년인 올해는 중국인들에게 최고 결혼의 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중국인들은 본래 개 짖는 소리인 ‘왕(汪)’과 왕성하다는 뜻의 ‘왕(旺)’의 발음이 같아서 개띠해를 좋아하는데다 올해 7월 음력이 한 번 더 끼면서 입춘(2월4일)이 한 해에 두 번 들어가는 ‘쌍춘년’이 돼서 행운이 더욱 왕성할 것으로 믿고 있다. 특히 양력 18일과 음력 28일이 겹쳐 쌍팔길일(雙八吉日)이었던 지난 18일에는 베이징의 결혼등기소 앞에 신랑ㆍ신부들이 장사진을 이뤄 등기소는 다음날 새벽까지 결혼등기를 받아야 했다. 여기에다 내년은 600년 만에 찾아오는 ‘황금돼지해(金猪年)’라는 속설 때문에 출산의 행운까지 거머쥐려는 중국인들의 열망이 더욱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베이징 시내 병원 주요 분만실은 이미 예약이 꽉 찼고 주요 백화점들은 황금돼지해를 주제로 한 유아용품 마케팅에 본격적으로 돌입했다. 내년에는 필경 중국에 전례가 드문 ‘베이비 붐’이 찾아올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행운에 대한 기대가 현실과 늘 일치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새 천년이 열리는 해였던 2000년 용띠해를 맞아 사상 유례없는 베이비 붐이 일면서 예년의 두 배에 달하는 3,600만여명의 ‘밀레니엄 베이비’들이 태어났지만 정작 이 아이들은 9월 초등학교 입학 때 받아줄 학교가 부족해 낭패를 당해야 했다. 자녀에게 좋은 운세를 갖게 하려는 부모들의 열망은 일단 성취됐지만 밀레니엄 베이비들은 대학입시와 취업 등에서 치열한 경쟁을 치러야 하는 역설적인 운명에 처하게 됐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황금돼지’의 길운에 희망을 걸고 출산을 준비하는 젊은 신혼 부부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절호의 재테크 기회가 왔다”며 투자를 준비하는 개인과 기업들도 더러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현실의 짙은 그늘이 일부 반영된 듯해 씁쓸하다. 하지만 내년에는 모두의 소원이 이뤄질 것을 기대한다. 희망의 끈마저 놓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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