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기업들 "돈있어도 투자할곳 없다"

■ 회사채 중도상환 왜 늘어나나경기불투명 설비확장·신규사업 엄두 못내 "경기둔화로 석유화학업종이 공급과잉 상태를 보이고 있어 앞으로 2~3년은 시설투자를 하지 않을 계획입니다. 금리인상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는 만큼 돈이 생기는 대로 빚부터 갚는다는 방침입니다." 지난 17일 5,010억원의 회사채를 조기상환한 SK㈜의 이규빈 재무담당 상무의 말은 대기업들이 회사채를 조기상환하는 이유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무엇보다 현금을 많이 확보하고 있는데도 마땅히 쓸 곳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경기의 더블딥(이중침체) 우려 등 국내외 경제상황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투자를 늘리기 어려운 실정이다. 또 시중에 넘치는 돈을 회수하고 부동산 투기를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금리인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따라서 금융비용 부담이라도 줄이자는 차원에서 기존의 빚을 갚는 데 나서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회사채 조기상환 붐이 연말이 가까이 올수록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금리인상 가능성이 시간이 갈수록 커지고 있어 기업들의 조기상환 발걸음도 한층 빨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 금리인상 전에 갚고 다시 빌리자 16일 법정관리 기업인 건영은 800억원의 차입금을 높은 조기상환 수수료를 내면서 한미은행에 갚았다. 아파트 분양으로 여유자금이 생긴 만큼 연9.75%의 고금리 빚을 더 이상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을 뿐만 아니라 금리가 오르기 전에 다시 돈을 빌리기 위해 서둘러 빚을 갚은 것이다. 건영 재무팀의 한 관계자는 "건설사업의 특성상 또 돈을 빌려야 한다"며 "한푼의 이자라도 줄여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달 들어 대기업들의 회사채ㆍ차입금 조기상환이 급증하는 가운데 발행규모가 소폭 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금리인상 전에 빚을 갚고 다시 빌려 금융비용을 줄이겠다는 전략이다. 대기업 관계자들은 어차피 시중에 넘쳐나는 유동성을 어떻게든 흡수해야 하는 통화당국으로서는 결국 택할 수 있는 방법이 금리인상밖에 없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D그룹 재무담당 임원은 "과잉 유동성을 오래 방치하다가 뒤늦게 금리를 대폭 올릴 경우 심각한 버블 붕괴현상이 나타나면서 경기가 꺾일 우려가 있는 만큼 금리인상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며 "금리인상 전에 회사채를 조기상환한 후 회사채와 자산유동화증권(ABS) 등을 좋은 조건으로 발행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 넘치는 돈 쓸 곳이 없다 증권거래소에 따르면 상반기 현재 기업들의 현금등가물(현금+예금+단기금융상품)은 총 13조7,004억원. 경기가 불투명한데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2% 늘어난 금액이다. 이처럼 돈이 풍부해진 기업들의 입장에서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빚을 갚는 것과 설비투자 확대, 또 신규사업 투자 참여 등이 있다. 그러나 올들어 계속된 세계경기 침체와 수출부진은 기업들의 신규사업 투자를 가로막고 있다. 실제 국내기업 산업생산지표에서 설비투자는 사상 처음으로 8개월째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이 상무는 이와 관련, "경기회복이 더디게 나타날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과 달리 오히려 침체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있다"며 "신규투자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설비투자나 신규투자와 같이 생산에 자금을 활용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기업들의 선택은 당연히 회사채 조기상환 등 빚을 갚아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데 집중되고 있다. 하반기 들어 대기업의 회사채나 차입금의 조기상환이 봇물을 이루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지난달 삼성종합화학이 4.2%의 낮은 금리에 만기가 오는 2004년 12월인 외화대출금 398억원을 일시에 상환한 것을 비롯해 LG칼텍스는 575억원, INI스틸은 281억원을 만기를 약 5년 앞두고 상환했다. ▶ 조기상환 코스닥기업에는 독 대기업들과 달리 중소기업, 특히 코스닥기업들은 주식연계 해외채권의 조기상환 요구로 심각한 자금압박을 받고 있다. 증권업협회에 따르면 올들어 코스닥기업이 만기 전 해외사채 취득금액은 약 4,000억원. 만기 전 취득이 많은 것은 주가하락으로 투자자들이 풋옵션(조기상환청구권)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신용도가 낮아 신규발행이 어려운데다 투자자들의 조기상환 요구까지 겹치면서 부도위기에 몰릴 정도로 자금압박을 받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주가가 회복될 경우 한고비를 넘기겠지만 시장이 이 상태로 지속된다면 원리금 미상환으로 부도 도미노 현상이 일어날 위험도 있다"고 우려했다. 김현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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