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굿은 약자의 아픔 어루만지는 축제죠

영화 '만신' 감독 박찬경

일제이후 굴곡진 역사 견뎌온 무속인 김금화의 삶 조명

다큐·드라마 적절히 버무린 독특한 연출기법도 눈길

영화 '만신'의 한 장면. /사진제공=엣나인필름

백정보다 못한 게 무당이라 취급받던 시절, 만신(무녀를 높여 이르는 말) 김금화(중요무형문화재)에게는 탄생 자체가 축복이 아닌 고난의 시작이었다. 일제강점기, 열네살의 금화는 위안부 소집을 피해 시집을 가지만 시댁의 모진 구박과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친정으로 도망친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걸 보고, 듣지 못하는 걸 듣는 남다른 아이였던 그는 고통스러운 신병(神病)을 앓으며 유년 시절을 보낸다. 1948년 열일곱의 금화는 결국 운명을 피하지 않고 신내림을 받아 무당이 된다. 한국전쟁 발발 후 남과 북, 양측으로부터 스파이로 오인받아 수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산 자와 죽은 자의 넋을 위로한다. 한 때 '미신타파' 움직임으로 온갖 탄압과 멸시의 한가운데에 서기도 했지만, 그는 무속인으로서 힘겨운 삶을 기꺼이 두 어깨에 짊어지고 위엄과 자존감을 잃지 않았다. 일제강점기부터 현재까지 오랜 시간을 견뎌온 김금화의 애달픈 삶은 이렇듯 굴곡진 우리 현대사의 명암과도 묘하게 맞닿아 있다.

박찬경(49·사진)감독은 한 여인의 삶, 독특한 한국적 무속의 세계와 우리네 현대사가 만나는 지점에 돋보기를 들이댔다.


24일 오후 서울 동작구 한 극장에서 만난 박 감독은 "영화 '만신'(3월 6일 개봉)을 통해 우리 역사가 무당 한 개인의 삶을 어떻게 굴절시키는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동시에 "성(聖)과 속(俗)의 성격을 모두 지닌 총체적 예술의 집합이라 할 수 있는 무속, 그 속에 깃든 공동체 정신과 각종 예술적 장치를 양지의 문화로 끌어내 떳떳하고 시원하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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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신도안'(2008), 형 박찬욱 감독과 공동연출한 '파란만장'(2011) 등에서 알 수 있는 박찬경 감독의 무속에 대한 관심은 꽤 오래전부터다.

"여전히 굿, 무속은 음지의 문화로 여겨지고 다큐멘터리든 영화든 대다수 매체가 미신적인 요소 혹은 신비한 쪽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굿은 '치유'입니다. 약자들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응어리를 해소하는 해방구와도 같죠. 동시에 마을 공동체를 통합하는 일종의 축제 역할도 했습니다. 오락과 위안의 기능이 뒤섞인 굿, 이것이 제가 말하는 무속의 원형이자 자산입니다."

박 감독이 그리는 굿은 신선하다. 영화는 그저 그런 다큐멘터리이기를 거부한다. 자료사진과 기존 화면들을 활용하는 전통적인 다큐멘터리 기법을 쓰면서도, 배우 김새론·류현경·문소리가 연기하는 재연 드라마를 영화 곳곳에 배치해 마치 다큐와 드라마가 대화를 주고받는 듯 대구를 이루게 했다. 설치미술·사진·미디어 아트를 넘나드는 미술작가답게 박 감독은 애니메이션과 각종 특수효과, 현대음악·전통 무가 등 음악적인 요소까지 버무렸다. 일반 영화에서 보기 힘든 연출기법과 이미지적 요소는 쉽사리 스크린에서 눈을 떼기 어렵도록 보는 재미를 더한다.

영화 '만신' 이후에도 박 감독의 무속에 대한 진지한 고찰과 탐구는 계속된다. "써 놓은 각본 하나가 있습니다. 현대 대도시에 사는 여성, 커리어우먼에게 어느 날 갑자기 신(神)이 찾아온다면 어떤 혼란을 겪을지에 주목합니다. 판타지와 공포가 결합 된 장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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