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이후 잠시 주춤했던 동아시아 시장의 랠리가 다시 시작되는 느낌이다. 홍콩, 태국, 싱가포르, 타이완 등 주요 동아시아 증시가 6~7월 형성됐던 단기 고점을 재차 돌파하고 있다. 미국 주식 시장이 아직 7월 고점 수준 아래에 머물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8월 이후 동아시아 시장의 수익률은 상대적으로 돋보인다. 이러한 재상승의 배경에는 역시 외국인들의 매수 재개가 역할을 하고 있다. 타이완, 태국, 한국 등에서 일시적으로 매도 전환했던 외국인들이 지난 주 중반부터 적지 않은 규모의 주식을 다시 사들이고 있다. 올해 동아시아 주식시장의 상승은 기본적으로는 미국을 축으로 하는 `기업이익 회복론`의 흐름을 타고 있다.
이 때문에 이들 시장의 주가 등락은 미국 증시의 등락과 움직임을 같이 해 왔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하지만 주목할 점은 동아시아 시장으로 유입되고 있는 국제 투자자금의 규모가 미국 등지에서 펀딩(funding)되는 원천 자금의 규모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100억달러의 글로벌 주식투자 자금이 펀딩되었다면, 아태지역(일본제외) 주식시장 시가총액이 세계 주식 시장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4%이니까 4억달러 정도의 자금 유입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아ㆍ태 지역으로 유입되는 주식투자 자금의 규모는 이러한 통상적인 비중 이상이다.
이러한 아ㆍ태 지역에 대한 외국인들의 상대적인 선호 배경에는 중국이 자리잡고 있다. 연초 이후 중국 증시의 상승률은 여타 아ㆍ태 국가들의 2배에 가까운 60%대에 이르며, 외국인 자금 유입규모 역시 여타 시장을 압도한다. 7월 중 아시아 펀드(일본제외)로 유입된 미국 자금이 6,400만 달러였는데, 중국 펀드는 6,000만 달러에 달할 정도다. 다시 말해 중국이 최근 아시아 증시 상승의 핵심에 있다는 얘기다.
이러한 중국 증시 상승을 놓고 최근 중국 당국이 1,200개의 주식이 상장되어 있는 3,5000억 달러 규모의 내국인 전용 시장을 점진적으로 개방하고 있는 효과로 보는 시각이 있다. 하지만 중국석화ㆍ차이나텔레콤ㆍ칭타오맥주 등 많은 중국 우량 기업들은 이미 홍콩 증시에 이중 혹은 단독 상장 되어 있고, 차이나모바일ㆍ차이나유니콤처럼 홍콩 국적 법인을 새로 설립해 홍콩 증시에 상장한 경우도 많다.
미국 뉴욕 증시에도 ADR 형태로 14개 기업이 상장되어 있다. 외국인 입장에서 중국 주요 기업의 주식을 사려면 홍콩 증시에 상장되어 있는 중국주식을 사면 된다. 최근 홍콩 항셍 인덱스 보다 중국석화ㆍ차이나텔레콤 등의 주식이 2배 이상 초과 상승한 것은 이러한 외국인들의 선호가 작용했다고 보여진다. 어쨌든 한국 주식을 비롯한 동아시아 시장에서 최근 외국인들의 행태를 가늠하려면 홍콩시장의 중국주식들의 움직임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또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중국을 비롯한 아ㆍ태 지역의 2ㆍ4분기 정보기술(IT) 판매가 예상외로 호조를 보였다는 사실이다. 아ㆍ태 지역의 2분기 PC 판매량이 오히려 크게 증가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2ㆍ4분기는 전통적으로 IT 수요의 비수기인데다 사스 영향까지 가세해 실적이 크게 악화될 것으로 내다 봤었는데 예상이 빗나갔다. 인텔의 경우도 2ㆍ4분기 매출이 1ㆍ4분기 매출을 웃돌면서 미국 주식시장을 견인했는데, 이는 매출 비중의 50%가 넘는 아태 지역(결국은 중국)의 판매 증가 때문이었다. 더욱이 중국 수요를 잘 대변해 주는 타이완의 주요 IT 기업들의 7월 실적을 체크해 보면 이 같은 중국의 추세는 3ㆍ4분기에도 이어질 태세다. 최근 동아시아 시장이 전고점을 다시 돌파하는 상대적 강세를 보이고 있는 것도 최근 타이완 실적 발표와 관련이 깊다. 왜냐하면 2ㆍ4분기 실적이 워낙 기대보다 좋았기 때문에 3ㆍ4분기 실적은 기대에 다소 미치지 못하리라는 심리적 부담이 있었는데, 타이완의 7월 실적 발표가 이러한 부담을 덜어주는 전향적인 시그널로 시장에 받아들여 지면서 동아시아 주식시장이 다시 자신감을 찾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한국과 동아시아 주가의 움직임이 표면적으로는 미국 증시와 연동되는 것 같이 보이지만, 내면에는 보이지 않는 이른바 `차이나 스토리`가 어느 정도 작용하는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2000년 버블 붕괴 이후 3년 반이 지난 지금 동아시아 주식 시장의 환경은 `미국에서 중국으로` 큰 그림이 서서히 바뀌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정호 미래에셋증권 투자전략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