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내실강화 경기대응력 높여야

"경제早老化 가속땐 일본식 불황"■ 기업 투자축소 성장잠재력 약화 우려 철강등 설비과잉에 수출경기 회복 안돼 '한국경제의 성장잠재력에 빨간 불이 켜졌다.' 12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우리나라 기업의 자금부족 추이와 시사점'이란 연구보고서는 우리 경제가 지속적인 성장을 하는 데 필요한 투자가 갈수록 탄력을 잃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최근 경기가 회복조짐을 보이면서 일부 업종을 중심으로 설비투자자금의 수요가 일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장기적으로 먹고 살아야 할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시설에 대한 투자는 날로 감소하고 있다. 우리 경제의 조로화(早老化)가 급진전하고 있는 것이다. 기업의 투자의욕은 기업 부문에 자금이 남아도는지 또는 부족한지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충분한 내부유보금이 없는 상태에서 투자가 활발하면 기업은 늘 자금부족에 시달린다. 미국기업은 지난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마땅한 투자대상을 찾지 못해 자금잉여 주체였지만 정보기술(IT) 투자확대와 함께 자금부족 주체로 돌아섰다. 일본기업들도 98년부터 투자를 꺼리면서 여유자금을 놀리고 있다. 이런 투자부진은 일본의 경기침체를 장기화시키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 투자부진 현상 장기화 조짐 97년까지만 하더라도 국내 제조업체들은 생산능력 확대에 주력했다. 이에 따라 생산능력 투자가 전체의 70%에 근접했다. 하지만 이 비중은 98년 60.8%로 떨어진 후 지난해에는 59.1%로 내려갔다. 반면 기업들이 생산설비 합리화에 초점을 맞추면서 이 비중은 97년 14.2%에서 지난해 22.3%로 높아졌다. 한편 연구개발 투자 비중은 계속 7~8%선에 머물고 있다. 기업들의 투자가 활발하지 않은 것은 우선 경기전망이 불투명한데다 과거의 설비과잉 현상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설비과잉으로 수익성이 크게 떨어져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겪으면서 설비투자 자체를 꺼리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김석중 전경련 상무는 "경기가 불투명한 탓에 기업의 투자의욕이 크게 위축된데다 중국이 새로운 생산기지로 부상하면서 기업들이 굳이 국내에서 설비투자를 확대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성태 한국은행 이사는 "철강ㆍ유화 등 일부 업종에서는 아직도 설비과잉 현상이 해소되지 않아 투자확대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 기업투자 전망 업종별로 차이가 있으나 투자가 크게 살아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내수가 호전되고 있지만 수출경기는 그렇지 못해 당분간 적극적인 투자는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엄기웅 대한상공회의소 상무는 "아직까지는 과잉설비가 조정되는 시기로 봐야 한다"며 "선진국 경기의 본격적인 회복이 가시화되지 않는 한 국내 기업들은 설비투자를 늘릴 수 없는 형편"이라고 밝혔다. SK 구조조정본부의 한 관계자는 "필수불가결한 증설 외에는 앞으로 설비투자는 최대한 억제할 방침"이라며 "큰 폭의 수요증대가 기대되지 않는 상황에서 투자확대는 기업뿐 아니라 산업 전체의 가치를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유화 등 일부 업종에서는 앞으로 수요가 늘어나도 신규 설비투자보다는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생산능력을 확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반면 초박막액정표시장치(TFT-LCD), 휴대폰 등 국내 업체들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품목의 설비투자는 계속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 구조조정본부 관계자는 "전세계적인 1등 품목에 대한 설비투자는 지속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나 나머지 품목의 설비는 유지 및 보수에 주력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 기업의 대응과제 우선 경기가 수출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회복세를 보여야 기업들은 투자를 늘릴 수 있다. 단 이에 앞서 기업들은 내실을 더욱 강화해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우리의 경우 투자에 대한 내부유보자금의 비중을 나타내는 '투자재원자급도'는 2000년 현재 61.4%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IMF 외환위기 이전의 40% 수준에 비해서는 크게 높아진 것이지만 미국ㆍ일본 등에 비해서는 턱없이 낮다. 미국의 경우 투자재원자급도가 90%를 웃돌고 일본은 100%를 넘는다. 남양우 자금순환통계팀장 "기업들이 경영합리화를 통해 영업이익을 늘려 내부유보금을 확대해야 경기대응력과 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문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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