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IMF 긴축요구 한국상황엔 부적절”/IMF시대 우리경제

◎“부실채권확대·관치금융 주변정세 맞물려 위기초래 멕시코사태와는 달라”/“아통화절하 지나쳐 역효과 우려 핫머니 시장교란 대비 강력한 감독기능 갖춰야”□조윤제 서강대 교수 매키넌 미스탠퍼드대 교수 세계경제연구원 초청으로 방한한 로널드 이안 매키넌미스탠퍼드대경제학선임교수가 서울경제신문주최로 8일 서울 롯데호텔 비지니스센터에서 IMF(국제통화기금)시대 우리 경제에 대한 방향제시를 위해 조윤제서강대교수와 긴급 대담을 가졌다. 매키넌교수는 61년 미네소타대학에서 경제학박사학위를 받고 개도국의 금융 및 무역정책, 환율제도, 국제통화개혁 등을 집중적으로 연구해온 세계적인 석학이다. 그는 60년대부터 한국의 통화 및 환율제도에 대해 자문을 해왔으며 현재 스탠포드대학에서 국제무역 및 금융, 통화및 은행제도 등을 가르치고 있다. ▲조윤제 교수=불과 6개월사이에 태국과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뿐 아니라 홍콩까지도 외환 및 자금시장 불안에 휩싸이게 됐다. 동아시아 전반에 걸친 금융위기의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는지. ▲매키넌 교수=아시아지역의 위기는 오랜 기간에 걸쳐 축적된 것으로 판단된다. 태국이나 말레이지아나 한국 등의 국가에선 은행이나 종금사 등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이 확대되고, 금융기관의 자금운용을 정부가 관할하는 등 문제의 요인이 쌓여온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문제들이 지난 6개월동안 갑자기 분출된 데는 다음 두가지 직접적인 원인을 들 수 있다. 우선 올 상반기 태국의 정치적 혼란을 들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태국 정부는 금융기관에 대한 중앙은행의 대출을 강요하는 등 금융시스템의 혼란을 초래했고, 이로 인한 태국의 통화위기가 아시아 전역으로 확산된 것이다. 또 하나의 원인은 일본경제가 예상외로 약화된 점이다. 지난 6개월간 일본 경제상태가 급격히 악화된 것이 올 하반기들어 주변 지역의 경제위기로 파급됐다. 앞서 지적한대로 이번 아시아 경제위기의 뿌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자라고 있었으나,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은 이 두가지 요인이었다. ▲조=아시아 각국마다 나타나는 위기의 양상에 차이는 없는지. ▲매키넌=이번 사태에서 한가지 강조돼야 하는 것은 은행위기와 통화위기의 차이다. 은행위기란 금융기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서 이들 기관에 맡겨둔 자금이 인출되는 사태를 말하는 것이며, 통화위기란 외환시장이 공략당하면서 일국의 통화가치가 폭락하는 것을 일컫는 것이다. 이번 금융위기를 겪은 모든 아시아 국가들은 은행위기를 겪었다. 은행들이 해외차입에 의존하던 대부분 국가들은 은행위기가 통화위기로 이어졌으나 국제사회에서 채권자 입장인 일본에선 이같은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즉 일본은 은행위기로 인출된 자금이 또다른 예금창구로 옮겨졌을 뿐, 달러화로 빠져나가지 않았으므로 심각한 은행위기와 거시경제 악화에도 불구하고 통화위기에 처하지는 않은 것이다. ▲조=최근의 엔화 절하가 이 지역의 위기를 조장했다는 의견도 있는데. ▲매키넌=95년 4월 달러당 80엔까지 절상됐던 엔화는 지금 달러당 1백30원수준으로 크게 절하됐다. 이것이 일본에 큰 영향을 받는 아시아 국가들에게 어느정도 압력을 가한 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현재 엔화가 지나치게 평가절하됐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기타 아시아의 약소국가들의 통화가치가 지나치게 절하된 것이 심각한 문제다. 한 나라의 통화가치가 급락할 경우 이는 인접 국가의 통화가치를 끌어내리는 압력을 행사한다. ▲조=IMF 프로그램에 문제점이 있다면. ▲매키넌=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IMF프로그램이 은행들에 대해 직·간접의 환위험에 대비한 강력한 규제의무를 부과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IMF 프로그램은 이 부분을 다루고 있지 않다. 환위험이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때 통화위기의 우려는 급속히 확산되므로 이 부분이 특별히 강조돼야 한다고 본다. 한편 한국내에서 가장 큰 논란대상은 외국인의 자금시장 참여를 대폭 확대하는 부문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외국 자본이 개방압력을 가하는 것을 좋게만 바라볼 수는 없겠으나, 여기에도 플러스와 마이너스효과가 있다. 우선 플러스 효과로는 외국인의 참여 확대로 인해 금융시스템에 대한 정부의 개입이 약화되고 시장의 힘이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즉 자금시장에서 국내 정치가 행사하던 영향력이 줄어들고 외국인이 그자리를 메우게 됨으로써 자금흐름에 대한 감독기능이 그만큼 정치와는 분리된다. 반면 부정적인 효과로는 핫머니 통제가 더욱 어려워진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에 대비하기 위해선 은행권에 통화위기에 대한 강한 감독규제를 적용시키고 자기자본비율을 높일 필요가 있으며, 이 강력한 규제은 외국계 은행에 대해서도 국내은행과 마찬가지로 적용돼야 할 것이다. 특히 환위험에 노출된 금융기관에 대해선 높은 자기자본비율을 적용해야 한다. 또하나 지적할 사항은 한국 은행들의 채권발행을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은행이 채권을 파는 독일 자금시장과 같은 구조가 되면, 한국은 금리리스크 발생을 막을 수 있을 것이며, 자본시장 개방을 맞아 핫머니 유출입에 대한 통제를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조=옳은 지적이다. 그런데 거시적으로는 동아시아, 특히 한국 경제가 크게 악화되지 않은 상태며, 이번 위기는 오히려 금융 불안정과 그로 인한 부도사태에서 초래됐다는 지적이 있는데, 이같은 상황에서 IMF가 요구하는 수준의 긴축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는가. IMF의 강력한 긴축요구가 멕시코에서 효과를 거둔 것은 사실이지만 동아시아 경제상황이 당시 멕시코와는 상당히 다른 상황인데. ▲매키넌=한국 경제는 거시경제에 불균형이 크지 않은 것을 비롯, 멕시코 경제와는 많이 다른게 사실이다. 따라서 IMF가 한국에 대해 5%라는 인플레이션 타겟을 제시한 것 외에 성장률 타겟을 제시할 필요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금융산업구조조정이 상당기간 성장을 둔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IMF에게 제안하는 것은 각국 인플레이션 타겟을 쉽게 달성하기 위해 위기 국가들의 통화를 구매력평가에 맞추어 절상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한 나라의 통화가치를 높이는 것만으론 아시아 통화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 따라서 IMF의 관할하에 위기에 처한 모든 국가들의 통화가치를 통합적으로 절상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이같은 통합적 방법으로 각국 통화가치를 끌어올림으로써 우선 ▲아시아 각국의 강한 물가압력을 상쇄하고 ▲달러 채무자의 부담을 경감시키며 ▲일본이외의 나라들이 겪는 고금리문제를 어느정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조=지적하신대로 고금리는 금융시스템에 큰 피해를 입히고 경제 회생을 지연시킨다. 그런 의미에서 금리 인하를 위한 아시아내 통합적 통화절상은 매우 참신한 발상이라고 여겨진다. 한편으로 아시아 국가들의 통화가치는 엔화 가치에 적잖은 영향을 받는 것이 사실인데, 향후 엔화 환율은 어떻게 전망하는가. 특히 엔화의 적정환율은 얼마라고 보는지. ▲매키넌=엔화는 95년까지 줄곧 고평가되다가 지금은 달러당 1백30엔수준까지 절하된 상태다. 1백30엔수준이 상당히 가치절하된 상태인만큼 굳이 적정환율을 따지자면 1백30엔대보다는 1백20엔수준이 적합하다. 하지만 구매력평가기준으로 볼때 엔화 환율은 어느 정도 적정환율에 근접한 수준이므로, 그보다는 IMF가 다른 아시아국가들의 통화가치 절상에 주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장기적으로 엔화환율을 내다보면 향후 10∼20년내 엔화가 서서히 절상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일본 금리를 보면 알 수 있는데, 지금 일본의 금리는 미국 금리보다 4∼5%포인트 낮은 2% 이하수준에서 머물고 있으며 단기금리는 0%에 근접한 수준이다. 이는 자금시장이 엔화가 장기적으로 절상추세로 돌아설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다. ▲조=지금 한국 경제는 날마다 기업 부도가 발생하고 금융권이 붕괴하는 등 심각한 위기를 맞았다. 교수께서는 60년대부터 한국경제를 꾸준히 관찰해왔는데 한국이 이 상황을 어떻게 극복하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이라고 보는지. ▲매키넌=한국은 그동안 여러차례 위기상황을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위기의 근본요인을 충분히 해소하지 못했다. 지난 65년 은행개혁과 세제개혁의 여파로 66년 이후 성장이 크게 위축되고 물가가 급등하며 저축률도 크게 떨어졌을 때도 그랬다. 위태로운 시기가 지나 정부는 성장률을 되돌리는데는 성공했지만 문제의 요인은 더욱 커졌던 것이다. 이로 인해 중화학공업분야의 투자는 비효율화되고 외채비중은 높아지는 등 금융시스템은 더욱 악화되기 시작했다. 이같은 문제가 가시화되면서 81년부터 84년까지 대대적 개혁이 이루어졌지만, 여전히 금융권에 대한 정부의 간섭은 지속됐다. 이제는 금융시스템과 정치권이 완전히 분리돼야 한다. 금융시스템은 중립적인 체제를 갖추고 정치권은 일부 감독기능만을 행사해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지난 6개월간의 위기가 한국경제를 완전한 자유경제체제로 이행시키지는 못했더라도, 구조조정을 촉발함으로써 한국 민주주의에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했을 것을 기대한다. 물론 정부는 금융권에 대한 기존의 영향력을 빼앗기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므로 구조조정과정에서 적잖은 문제가 야기될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긍정적 영향을 나타낼 것이다. ▲조=IMF 프로그램이 한국경제에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라고 봐야 하는가. ▲매키넌=경제가 어려움에 처하면 이해 배분(distributed politics) 해소를 위해 외부 압력을 필요로 할 때가 있습니다. 정치적 이해관계때문에 국내세력이 변화를 원치 않는 경우 IMF는 그 나라의 변화를 수행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현재 아시아에서 IMF 개입을 안받은 유일한 국가인 말레이지아는 IMF프로그램 내용을 자체적으로 가동시키고 있지만, 시장에서는 벌써 이 국가의 신인도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IMF의 주된 기능은 회원국의 신인도를 제고시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IMF의 관리를 받는 한국은 말레이지아 등 여타 국가보다 높은 국제적 신뢰를 받을 것이다. ▲조=장시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정리=신경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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