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낮술에 가슴이 미어지다

지난주 말 지방에 다녀왔다.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에 하루 종일 벌벌 떨다가 서울역에 도착했다. 경기도 꽁꽁 얼고 마음도 추운데다 날씨가 쌀쌀하니 따뜻한 것이 그리웠다. 저녁 무렵 계단을 내려와 보니 바로 앞 포장마차에서 어묵이며 순대를 팔고 있었다. 옛날 같으면 저곳에서 따뜻한 어묵 국물로 몸을 덥힐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행도 있고 해서 점잖게(?) 참기로 했다. 그래서 일행과 택시를 기다리며 서 있었다. 그때였다. 포장마차에서 ‘외마디소리’가 났다. 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쳐다보았다. 돌이나 지났을까. 감기 들지 말라고 두터운 옷을 입힌 한짐이나 돼 보이는 아이를 얼싸안은 엄마가 남편에게 소리를 지른 것이었다. “아이구, 이 인간아, 나를 죽여라 죽여. 그렇게 가만히만 앉아 있나. 손님은 오는데 당신이 손님인가. 이렇게 앉아서 소주만 마시고 있게…. 아이라도 봐줘야 할 것 아니니?” 얼핏 보아서는 악다구니를 쓰는 아낙네로 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삶의 무게에 짓눌린 그녀의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듯했다. 딱했다. 그녀는 아이를 들쳐 업고 포장마차 위에 걸려 있는 화장실용 티슈를 뜯어 끝없이 흘러나오는 눈물을 훔쳤다. 내 가슴은 미어지는 듯했다. 그제서야 아이 아빠는 멍한 시선을 거두며 일어서서 아이를 안았다. 아내는 굳세게 눈물을 훔치고 지나가는 손님들을 불렀다. “추운 날씨에 따끈한 국물 들고 가세요.” 저 필사적인 생활력에 내 가슴은 수없이 저며졌다. 저 남편도 딱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망신을 당한 저 남편인들 어찌 마음이 편할까 싶었다. 그 남자가 수도 없이 겪었을 실패와 좌절이 내게도 전해졌다. 일할 의지마저, 가장의 역할을 포기하는 저 남자의 낮술은 바로 우리네 사회에 좌절된 수많은 아버지, 남편, 젊거나 늙거나 한 모든 남자들의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정치란 결코 먹고사는 삶을 떠날 수 없다. 이상주의로 밀어 제친 개혁이 국민들의 곤궁한 삶이라는 현실로 나타났다. 저 아낙의 피눈물에, 저 남편의 좌절에 정치는 도대체 뭐라고 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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