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뉴얼이 없는 것인가, 아니면 정말로 시스템상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는 것인가.
13일 발생한 나이스정보통신의 전산센터 마비 사고는 매출 확대에만 신경을 쓰고 비상 시스템 증설은 소홀히 한 것에서 비롯된 전형적인 '인재'다.
금융계에서는 국내 카드 결제 대행업체 2위 규모의 회사가 단순 정전 때문에 두 시간이 넘도록 시스템이 마비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금융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일선 아파트조차 비상 전력을 확보하고 있는데 결제 업무를 수행하는 금융회사가 정전으로 두 시간가량 업무를 마비시켰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라면서 "업계 선두권이라는 회사가 이 정도 수준인 만큼 다른 밴사들도 당국이 철저히 검토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은 나이스정보통신 전산센터에 대한 현장검사에 착수했으며 회사 측의 과실이 발견될 경우 징계할 방침이다.
◇커피전문점부터 홈쇼핑까지 두 시간 넘게 피해 속출=나이스정보통신 전산센터가 정전되면서 이른 시간부터 문을 여는 커피 전문점, 패스트푸드 전문점에서 카드 결제가 중단돼 고객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해당 업계는 업종 특성상 현금 결제보다 카드 결제가 많아 이번 사태에 대응하기 어려웠다는 입장을 보였다. 일부 업체들은 카드 단말기 문제로 현금영수증 처리마저 불가능해져 고객이 나중에 현금으로 계산했다는 영수증을 가져오면 발급해주겠다고 약속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카페베네 관계자는 "단말기가 먹통되면서 현금영수증 발행조차 어려워 민원이 다수 발생했다"면서 "고객이 몰리는 점심시간을 피했기에 망정이지 조금만 더 결제 지연이 벌어졌으면 난리가 날 뻔했다"고 말했다.
결제 불통 문의는 카드사를 향하기도 했다. 일부 고객들은 최근 일어나는 일련의 금융 사고 탓에 "내 카드가 해킹된 게 아니냐"는 문의까지 할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했다.
신한·삼성·현대카드 등 카드사들은 해당 시간대의 민원 문의가 평시 대비 10%가량 증가했다고 밝혔다.
◇무정전설비 설치 감독 규정 "있으나 마나"=지난해 12월 개정된 전자금융감독규정에는 금융회사의 무정전설비(UPS) 설치가 의무화돼 있다. 전자금융감독규정에 따르면 전력 공급 장애 시 전력선 대체가 가능하도록 복수 회선을 설치하고 전력 공급의 연속성 유지를 위한 UPS를 갖출 것이라고 적시해놨다.
나이스정보통신도 UPS 장치를 설치했지만 작동하지 않았다. 나이스정보통신 측은 "UPS가 작동하지 않은 원인과 피해 현황을 파악하고 있다"는 설명을 오후까지 되풀이했다.
전문가들은 감독 규정이 존재하지만 금융당국이 실질적으로 해당 시스템이 작동하는지를 제대로 점검하지 않은 탓도 크다고 지적한다. 밴사 관계자는 "UPS가 동작하면 전력이 30분에서 한 시간가량 버틸 수 있는데 해당 기기가 작동하지 않은 점은 의문"이라면서 "금융당국이 업체별로 비상 발전 체계를 제대로 가동하고 있는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고 이어지는 나이스정보통신…결제 마비는 예견된 사고=나이스정보통신은 이번 정전 사태를 전원 공급 장치에 이상이 생겨 발생한 사고로 한 시간 만에 복구를 완료했다고 밝혔다. 피해 사례가 다수 접수되면 손해배상까지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하지만 나이스정보통신의 일련의 행보를 보면 이미 예견된 사고라는 시각이 팽배하다. 나이스정보통신은 지난해 두 차례나 시스템 과부하에 의한 서비스 장애가 발생했으며 재작년에는 한 달 새 수차례 장애가 발생한 적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말에는 임원 2명이 편의점 간부에게 가맹점에 대한 카드 결제 관리 권한을 달라며 수억원의 뒷돈을 건넨 혐의로 검찰에 구속기소되기도 하는 등 인적·시스템적 문제가 팽배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시장 점유율 15%로 업계 2위인 나이스정보통신은 자매사로 유사 업무를 수행하는 KIS정보통신까지 갖고 있다. 이 회사의 시스템이 계속해서 망가질 경우 고객 피해가 너무 커진다는 것이다. 카드업계는 카드 결제 업무를 수행하는 밴업계의 비상 전력 공급 사항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상황을 봐서 기관에 대한 징계를 결정짓고 직원들도 사안에 따라 견책 등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