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제2 '융합 안전모' 기대하며-이영수 한국생산기술연구원장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작업자의 필수품 중에 안전모가 있다. 새로 건축물을 짓거나 기존 시설물의 안전을 점검하는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위험에 대비해 작업자의 안전을 지켜주는 최소한의 보호장구다. 작업자들은 안전모를 착용한 상태에서 한 손에는 무전기, 다른 손에는 도면과 작업 도구 등을 들고 다닌다. 야간이나 컴컴한 실내에서는 손전등까지 들어야 한다. 이처럼 이것저것 들고 다니면 불편하기도 하지만 위험한 상황에 처하면 손을 쓰기 어려워 신속한 대처가 어렵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여기서 착안한 것이 이른바 '융합 안전모'다. 기존 작업모에 무선통신기기와 충격감지 센서, 조명을 내장해 능률과 안전도를 높인 제품이다. 이 안전모를 쓰고 있으면 무전기 없이도 상대방과 교신할 수 있고 별도의 조명기기를 갖고 다닐 필요가 없다. 일정 정도 이상의 외부충격이 가해지면 센서가 작동해 "괜찮으십니까?"라고 여러 차례 이상 여부를 묻고 착용자의 답이 없으면 관리센터에 사고발생을 통보하는 기능을 갖췄다. 이 제품은 기존제품의 여러 단점을 보완했지만 개발 후에도 한동안 판매될 수 없었다. '무게가 440g 이하이고 구멍이 없어야 한다'는 안전기준을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러 기능을 추가하느라 무게가 늘었고 센서 부착 등을 위해 모자에 구멍을 뚫는 바람에 안전규정을 '위배'한 것이다. 창의적 발상과 혁신을 통해 소비자만족을 극대화했지만 꽉 막힌 규제에 갇혀 버렸다. 바야흐로 융복합시대다. 다양한 영역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려 제품 간, 비즈니스 모델 간 융합을 통해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내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컨버전스가 대세인 시대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시스템·인프라의 유기적 결합을 강조하는 '콰드로버전스'가 산업 전반에 영향력을 넓혀가는 추세다. 실제로 소비자들은 기존의 발상과 영역을 뛰어넘는 융복합제품에 열광한다.

관련기사



그러나 아직도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낡은 제도와 관행이 혁신제품의 출현을 가로막는 일이 벌어지곤 한다. 물론 모든 규제에는 나름의 이유와 명분이 존재한다. 안전모 기준만 해도 작업자 보호라는 본래 취지를 충실히 따라 만들어진 것이다. 다만 세월이 흘러 규제의 내용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데도 이를 제때 바로잡지 못한 것이 부작용을 초래했을 뿐이다.

다행히 융합 안전모는 적절한 제도 개선과 관계부처의 유기적 대응으로 활로를 찾았다. 개별 법령에 해당 기준이 없거나 적용이 곤란한 융합 신제품은 인허가 소관부처가 유관부처·민간전문가와 협의해 기준을 마련한 뒤 문제가 없으면 6개월 안에 인증을 부여한다는 '융합 신제품 적합성 인증제도' 덕분에 제품출시의 길이 열렸다. 주관기관인 국가산업융합지원센터는 40여 차례의 협의를 일사천리로 진행하며 3개월 만에 절차를 마무리했다. 융합 안전모는 지난해 10월 인증을 획득한 후 곧바로 안전규정이 까다롭기로 소문난 일본에 수출돼 호평을 받고 있다. 앞으로 제2·제3의 융합 안전모가 각 분야에서 더 많이 쏟아져 나와야 한다. 창조경제의 성패도 여기에 달렸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