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CEO & Story] 김광호 쌍용C&B 대표

"제지ㆍ기저귀 수출 확대… 전세계 누비는 상상만 해도 신나"<br>대기업 임원 박차고 나와 1989년 무선통신단말기 업체 창업ㆍ상장<br>지분 팔아 모나리자, 쌍용제지 티슈ㆍ기저귀 사업 등 잇달아 인수



김광호 쌍용C&B 대표이사는 언론 인터뷰가 처음이라고 했다. 그래서 사뭇 긴장된다고 했지만 막상 말문이 터지자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데 거침이 없었다. 그는 사람을 끄는 특유의 친화력을 가진데다 달변가였다. 사실 그는 두산그룹에서 해외 지사장, 현지 법인장 등을 역임한 베테랑으로 정보통신(IT) 회사를 세웠고 또 인수합병(M&A)을 통해 티슈와 화장지, 기저귀 등을 만드는 쌍용C&B의 수장이 됐을 만큼 굴곡진 행보를 걸어왔다. 김 대표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면 ‘야전사령관’과 같은 인생을 살아왔다고나 할까. 김 대표의 사람 좋아 보이는 분위기 속에 가려진 진면목이다. 첫 직장이었던 두산 그룹에서의 생활이 자신을 단련시켰다고 스스로 평가한다. “두산에서 13년 넘게 일하는 동안 휴가는 딱 한 번밖에 없었어요. 남들이 주당 40~50시간 일할 때 저는 주당 100시간을 일했습니다. 오전 8시30분에 출근해 헉헉거리는 사람이 7시 전에 출근해 하루 일의 절반을 끝낸 사람을 어떻게 이기겠어요.” 김 대표는 말 그대로 일벌레였다. 회사 일과 가정의 균형을 제일로 치는 요즘 신세대 직장인의 사고방식으로 보면 “너무 한다” 싶을 정도다. 해외 법인장을 할 때는 공장에 간이침대를 갖다놓고 공장에서 먹고 자고 했단다. 그렇게 3개월 정도 지나자 공장 일이 눈에 들어왔다. 김 대표는 “회사에 다니면서 이 부서 저 부서 옮겨다니며 열심히 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실력이 쌓였고 자신감도 생겼다”며 “힘들었지만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특히 그의 적극성은 유별난 데가 있었다. 자신을 해외 바이어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해 와이셔츠 왼쪽 소매 끝에 ‘David KIM’이라는 이름 이니셜을 박아서 다녔을 정도였다. 효과가 좋았다고 한다. 지금도 그의 와이셔츠에는 ‘David KIM’이 새겨져 있다. 하지만 김 대표는 두산을 떠나기로 결정한다. 사장을 꼭 해보겠다는 꿈이 있었지만 대기업의 오너 시스템은 일종의 벽처럼 느껴졌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래서 두산을 나와 1989년 무선통신단말기 등을 만드는 웨스텍코리아를 세웠다. 대기업 시절의 현장경험을 바탕으로 사업가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회사를 만들면서 10년 이내에 기업공개(IPO)를 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죠. 다행스럽게 지난 1999년에 웨스텍코리아가 코스닥에 상장됐습니다.” 쌍용C&B의 전신은 쌍용제지다. 김 대표는 2005년 한국P&G에서 운영하던 티슈사업부를 인수한 후 사명을 쌍용C&B로 바꿨다. C&B는 ‘클린앤베스트(Clean&Best)’란 뜻으로 소비자 모두가 만족할 만한 깨끗함과 최고 품질의 제품을 만들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이후 2007년에는 한국P&G로부터 기저귀 사업도 추가 인수해 현재와 같은 진용을 꾸렸다. 인수합병(M&A) 분야에서 뛰어난 역량을 보여왔다는 평가에 대해 그는 조심스러워했다. M&A에 대한 일부의 시선이 부정적인 탓이다. 그는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앞으로 M&A는 더 활성화될 것”이라며 “경험을 떠올려보면 회사를 인수한 후 방황하는 직원들에게 목표의식과 희망을 불어넣는 데 주력했었다”고 말했다. 김 대표의 경영능력은 수치로 입증되고 있다. 쌍용제지 인수 당시인 2005년 500억원 하던 매출은 지난해 1,268억원으로 커졌다. 올해는 1,500억원 달성이 무난할 것으로 전망된다. 향후 목표는 더 야심차다. 3년 내 매출 목표를 2,500억원으로 잡았다. 그는 프리미엄 제품과 글로벌 시장 개척으로 볼륨을 키운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김 대표는 “두루마리 화장지의 경우 올해 시장규모가 5,300억원에 이르고 성장률도 9% 정도”라며 “생활 수준 및 국민소득의 성장에 따라 프리미엄 제품 비중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기 때문에 달성 가능한 목표”라며 시장을 긍정적으로 봤다. 최근에는 ‘티슈 브랜드 ‘코디(CODI)’와 기저귀 브랜드 ‘큐티퀄트’에 대한 마케팅도 강화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특히 황토가 함유된 ‘코디 울트라 웰빙 황토’와 천연 해조류 추출물이 들어간 ‘코디 울트라 블루마린’ 제품이 프리미엄 화장지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다. 그는 “제지나 기저귀 부분 모두 해외 영업력을 강화해 선진국은 물론 중국 등 아시아 시장에 완제품 형태로 수출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며 “우리 브랜드가 전세계에 유통되고 판매되는 것을 상상하면 너무나 신이 난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과감한 투자를 통해 조치원 공장의 생산 및 가공설비를 업그레이드시켰다. 모두 뛰어난 품질의 프리미엄 제품을 내놓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김 대표의 솔직한 면모는 노조와의 관계개선에도 한몫했다고 한다. “지난해부터 노조와의 관계도 무척 좋아졌어요. 노조와 삐걱거리는 것 같아 제가 발가벗는 심정으로 노조와 대화했어요. 회사가 돈을 많이 벌면 다 직원들이 챙기는 것 아닌가요? 사이가 나빠질 이유가 없어요.” 김 대표는 평소 직원들에게 ‘최선을 다하자’ ‘항상 배우자’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갖자’는 말을 자주 한다고 전했다. 자기 실력을 키우고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고 양보ㆍ배려하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취지에서다. 그는 “세상에 공짜는 없다”며 “공부를 잘 하려면 공부를 많이 해야 하듯이 회사생활에 잘 적응하려면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광호 대표는
▦1953년 서울 ▦1976년 서강대 경영학과 졸업 ▦1975~1989년 두산그룹 해외 지사장, 현지법인장, 관계사 임원 ▦1989년 웨스텍코리아 설립 ▦1999년 윌트론 설립 ▦2001년 모나리자 인수 ▦2005년 쌍용C&B 설립, 엘칸토 인수 ▦현재 쌍용C&B 대표이사 회장
"취미는 외국인과 놀아주기ㆍ봉사활동"
외교클럽 아미시티아 회장 맡아… 각국 대사들에게 좋은 한국 이미지 전파
김광호 쌍용C&B 대표의 취미는 최고경영자(CEO)에게서 풍기는 통념적 이미지와 사뭇 다르다. 골프를 즐기고, 독서를 하고, 골동품을 수집하는 것 등과는 거리가 있다는 얘기다. 그는 “외국인들과 놀아주는 게 취미”라고 말했다. 그의 수첩을 잠시 훑어봤다. 일정표에는 ‘오만 리셉션’ ‘라오스 리셉션’ ‘그리스 대사 초청 저녁’ 등이 빼곡했다. 모임이 많을 때는 한 달에 열 번을 넘을 때가 있다고 했다. 어떻게 이런 ‘특이한’ 취미를 갖게 됐는지 물어봤다. “이웃집에 네덜란드 대사가 살았죠. 우연히 그와 인사를 나누게 되고 그를 통해 외국인 기업인을 알게 되고 또 기업인들을 통해 외교관을 알게 되고. 이런 식으로 사람을 만나다 보니 제가 어느새 외교가의 유명인이 돼 있더라고요." 그는 국내 거의 모든 국가 대사와 막역할 정도다. 실제 그는 ‘더 클럽 아미시티아(The Club Amicitia)’라는 모임의 회장을 맡고 있다. 아미키티아는 라틴어로 ‘우정’이라는 뜻으로 각 나라의 다양한 문화를 상호 교류하자는 취지의 모임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김 대표는 “우리 문화가 사뭇 배타적이어서 외국인들은 비즈니스로 만나는 사람 말고는 제대로 된 관계를 맺기 어렵다”며 “외국 대사들에게 한국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주도록 신경을 쓴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여가 활용법은 봉사활동이다. 그는 주말에 동사무소 등에 들러 소외된 이웃에게 도시락을 날라주는 등의 봉사활동을 한다. 김 대표는 “독거노인에게 도시락을 주고 바로 오기는 힘들다”며 “이런저런 일을 봐주고 말벗도 돼주고 하다 보면 하루에 다섯 집을 들르기 어렵다”고 전했다. 그는 기자에게도 봉사활동을 권했다. 대뜸 “어느 동네에 사느냐”고 묻더니 “그 동네도 낙후된 곳이 있다”며 “동사무소에 가보라”고 ‘봉사 전도사’다운 열정을 과시했다. 나눔의 정신도 강조했다. 김 대표는 “1960년대 말에는 우리가 베트남에서, 1970년대는 중동에서 일했는데 이제는 상황이 변해 국내에 200만명이 코리아드림을 품고 일하고 있다”며 “이들을 좀 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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