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알레그로 콘 브리오

많은 클래식 애호가들이 악성 베토벤의 수많은 작품 중 최고의 걸작으로 장엄미사곡(Missa Solemnis)을 꼽는다. 이유는 그의 유일한 종교곡으로서 기독교의 숭고한 교리를 정교하게 음표화했을 뿐만 아니라 완전히 청력을 잃고 신체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궁핍한 상태에서 맑고 숭고한 정신세계가 그대로 녹아 들어간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번 겨울은 참 우울하다. 100년 만에 왔다는 혹한과 폭설로 온 땅이 꽁꽁 얼어붙었고 작년 말부터 전국으로 퍼져나가는 구제역은 벌써 250만두의 소와 돼지를 땅속에 묻었지만 6명의 방역요원을 희생시킨 것도 모자라 계속 혀를 날름거리고 있다. 아직도 봄이 오기까지는 먼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절망할 필요가 없다. 누적된 피로와 정신적 고통을 안고서도 밤새가며 소의 혈관을 찾아 주사기를 꽂는 수많은 마음 여린 방역요원들과, 가족처럼 아끼는 가축의 살처분을 감수하면서 자그만 증상만 보여도 주저 없이 구제역 의심신고를 하고 있는 축산 농민들의 선한 모습들을 보고 있으면 아직 어둠 속이지만 조그만 화로처럼 피어 오르는 새 희망의 불씨를 본다. 이번 구제역 사태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동물성 단백질을 얻기 위해 우리가 해온 축산활동은 올바른 것이었던가. 어떤 사람들은 올 수밖에 없는 사태가 왔다고도 한다. 누구나 우리나라 축산업의 미래를 생각하는 것이다. 비좁고 인구밀도는 높은 이 땅에 적합한 축산업, 양질의 단백질과 아름답고 위생적인 생활환경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축산업의 모습은 어떻게 돼야 하는가. 우리가 가야 할 선진복지국가의 모델에 어울리는 미래형 축산업은 어떠해야 하는지 깊이 생각해 볼 때이다. 이번 겨울, 혹독한 추위 속에서 강산을 뒤덮는 가축들의 울음과 눈물, 이런 값비싼 대가가 결코 헛돼서는 안 된다. 이 점에서 얼마 전 국회에서 여야합의로 가축법 개정안이 신속히 처리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베토벤의 말년만큼이나 어렵고 힘든 시기를 보내는 지금, 우리는 오히려 가장 고귀하고도 아름다운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깊은 반성과 성찰을 통해 우리 축산업의 장엄미사곡을 탄생시켜 이 강산에 아름답게 울려 퍼지게 해야 한다. 미래 축산업의 새 아침을 여는 그 곡의 템포는 '알레그로 콘 브리오(allegro con brio)이다. 불(brio)과 같은 열정을 가지고 빠르게. 이 템포는 베토벤 운명교향곡의 시작부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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