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2월 19일] 해외차입금 상환과 신뢰회복

허찬국(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

이번 금융위기는 흔히 ‘신뢰의 위기’라고 일컬어진다. 금융거래에서 신용(신뢰)이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대부분 금융위기는 신뢰의 위기라고 할 수도 있다. 두세달 전만하더라도 세계 굴지의 은행들이 서로를 믿지 못해 엄청난 고금리를 물어야만 3개월만기 단기차입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아직도 신용도가 조금이라도 낮으면 거래의 기피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다. 최근 원화 환율이 급등세를 보이는 것과 국내 모 은행이 4억달러 후순위채 조기상환 옵션을 포기한 것이 무관하지 않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데 북한의 긴장조성과 같이 공조요인이 있어 명확한 분석이 쉽지 않다. 하지만 국내 금융사 여러 곳이 조만간 비슷한 결정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이번 일을 잘 해석해야만 한다. 외환·금융시장 다시 불안
차입금 조기상환 옵션은 그야말로 하고 싶으면 하고 그렇지 않으면 행사하지 않아도 되는 권리다. 언론에 따르면 몇몇 유럽 은행들은 근래에 이와 유사한 옵션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한다. 더욱이 조기상환-재차입 형식의 차환을 하려면 지난 2004년 발행 당시보다 훨씬 높은 금리를 물어야 한다. 아무리 봐도 조기상환을 하지 않는 것이 마땅한 결정인데 왜 외환 및 금융불안이 고조되고 있는 것일까. 현 상황은 지난해 하반기 국제금융불안이 국내로 전이됐던 것의 연장선상에 있다. 국내 은행들이 지난 몇 년간 외형 키우기 경쟁을 하는 과정에서 저금리의 해외차입에 의존했었는데 국제금융시장의 사정 악화로 갑자기 해외차입금 상환압력이 커졌다. 외화유동성 부족으로 외환위기 재발 가능성이 제기되기까지 했다. 미국 등과의 통화스와프 체결을 통한 외화자금 공급선 확보, 외화자금 지원 등으로 어려운 국면을 넘겼다. 그 이후 은행들은 주위의 곱지 않은 시선을 감수해야 했다. 그렇다면 은행들로서는 그동안의 외형 경쟁으로 키운 몸집을 줄이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다. 차입금 감축(deleveraging)과 대출 줄이기 등을 통한 자산 감축을 동시에 하는 것인데 쉽지 않은 일이다. 국내에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오히려 대출을 늘리라는 주문이 많기 때문이다. 상환 여부에 국한해보면 만기가 남아 있는 채권의 경우 계약상 의무사항이 아닌 경우 비싼 차환은 어리석은 일이다. 이렇게 무리 없는 결정이지만 매우 민감해진 국제금융시장에서는 이를 상환할 외화자금 조달 어려움 또는 은행의 몸집 줄이기 회피의 징후로 해석하는 시각이 있을 수 있다. 음모론적으로 보아 후순위채 보유 투자자들이 재발행을 원해 압력을 가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우리 외환 및 금융시장이 불안해지고 있다. 해결책을 찾아야만 한다. 첫째, 가능하면 민간의 해외차입을 줄이는 것이 좋다. 세계경제 위기 추이가 아직 확실하지 않다. 상황이 다시 악화된다면 우리는 또 상당한 외화부채 상환압력에 직면할 것이다. 따라서 지금은 외화차입은 줄이는 것이 좋다. 물론 위기 악화 걱정이 기우로 판명되면 우리 금융사들의 해외차입 여건 역시 좋아질 것이므로 그때 조달하면 된다. 민간 해외차입 가능한 줄여야
둘째, 은행들의 자금조달처를 해외에서 국내로 전환하는 것이다. 즉 국내에서 차입해 외화채무를 갚는 것이다. 은행의 외화자금이 충분하지 않으면 정부가 임시변통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쉬운 일이 아니나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셋째, 신용흐름 개선이 필요하나 모든 은행의 외형확대는 바람직하지 않다. 국책은행 등을 활용하는 동시에 중앙은행과 민간은행 공동참여로 대규모 자금을 조성해 새로운 신용공급원으로 쓰는 방안을 구체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무엇보다도 적절한 대응방안을 구체적으로 실행해나가는 게 중요하다. 문제대응능력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우리 경제에 대한 외부의 신뢰를 회복하는 최선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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