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3일 노무현 대통령에게 방북일정을 하루 더 연장할 것을 깜짝 제안했다가 노 대통령의 검토의견을 듣고 곧바로 철회한 배경에 관심이 쓸리고 있다.
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의 제안을 받고 수용여부에 대해 즉답을 피한 이유에 대해서도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김 위원장의 돌출 제안은 노 대통령 방북 마지막날 예정된 회담결과 발표를 하루 앞두고 갑자기 나온데다 정상회담 관례상 일정단축 또는 연장사례를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워 의외로 받아들여졌다. 노 대통령의 즉답회피도 일정에 부분 차질이 빚어진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주목을 받았다.
김 위원장의 이날 제안 배경에 대해 여러가지 해석이 뒤따랐다. 우선 노 대통령이 북측 사정에 따라 당초 방북일정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만큼 김 위원장이 노 대통령에게 예우 차원에서 배려했을 가능성이 크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김 위원장의 제안은 회담을 보다 충실히 하고, 오늘 오후 취소됐던 일정 등을 가능한 한 모두 소화하자는 취지로 받아들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회담성과를 높이기 위한 김 위원장의 의지라는 분석도 나왔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김정일 위원장 입장에서 뭔가 남북관계의 실질적 진전을 이룩할 합의를 구체화하고 싶었던 것 같다”고 풀이했다. 다시 말해 남북 정상회담 특성상 사전조율이 완전하게 이뤄지지 못한 상태에서 60년 폐쇄사회를 유지해온 북한 경제의 개혁ㆍ개방과 관련 노 대통령이 ’통 큰 결단‘을 요구하자 김 위원장이 일정연장을 통해 시간을 벌려고 했던게 아니냐는 것이다. 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의 제안을 즉시 수용하지 않고 신중한 반응을 보인 이유도 관심을 모았다. 노 대통령은 회담에서 경호와 의전을 이유로 들어 “참모들과 상의해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당초 예정된 일정이 연장되면 평양시내와 개성공단은 물론 서울 귀환길의 경호계획도 갑작스럽게 바뀌게 돼 신변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경호상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정상회담의 중요한 의전으로서 여러가지 실무적인 검토가 필요한 일정변경을 정상이라고 해서 즉석에서 결정하는 것은 외교적 결례에 해당한다. 노 대통령이 바로 이런 점을 감안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이런 표면상의 이유 말고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이란 주장도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의 제안을 수용할 경우 북측에 지나치게 끌려 다닌다는 국내 비판을 의식했거나 보적인 태도를 보였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일정을 하루 연장해봐야 더 얻을 게 없다는 노 대통령의 판단도 작용했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노 대통령이 오전 2시간10분에 걸친 첫번째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과 충분한 의견을 나눴고 이 과정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등 핵심의제에 대해 모종의 합의를 이끌어냈기 때문에 실익 없는 일정연장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의 제안에 대해 우리측의 ‘거부’가 아니라 김 위원장의 ‘철회’라는 천 대변인의 설명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됐다. 김 위원장이 회담 모두에 ‘일정 연장’을 제안했다가 1시간 가량 다른 의제를 다룬 뒤 회담말미에 철회했다는 설명이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우리측이 정상회담 외교관례와 의전을 고려해 ‘거절’을 ‘철회’로 포장했을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