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경제·금융일반

[파이낸셜 포커스] 의사결정 기능 상실한 KB국민은행 이사회

7월까지 경영 혼선 불가피

'전산시스템 교체' 금감원 결정에 사실상 일임

갈등의 골 깊어 해결 못해 "식물 이사회 시인한 꼴"

금감원 "5일까지 검사 마무리"… 제재까지 한달 정도 걸려

다른 사안도 유보 가능성


내부 갈등을 봉합하기에는 모든 것이 너무 늦어버린 탓일까. 벼랑 끝에서 팽팽한 입장 차를 좁히기는 역부족이었다.

전산 시스템 교체를 둘러싸고 내홍에 휩싸인 KB국민은행 이사회 얘기다. 지난 30일 열린 국민은행 긴급 이사회가 결국 모든 결정을 금융감독원의 손에 맡기기로 했다.


장장 7시간에 걸친 회의에서도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서 은행 이사회 기능이 사실상 마비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건호 국민은행장 측과 사외이사들 간 갈등의 골이 깊은 탓이라고는 하지만 이른바 리딩뱅크로 불리던 은행의 최고의사결정기구가 내린 결정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도 참담하다.

금감원은 빠르면 이번주 안에 검사를 마무리 짓고 다음달 중 결과를 내놓을 방침이다. 이에 따라 국민은행의 경영 혼선이 7월까지 불가피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LIG손해보험 인수전에 참여한 KB금융지주의 타격도 예상된다.


1일 금융계에 따르면 국민은행 경영진은 5월30일 열린 이사회에서 새벽까지 이어지는 마라톤 협상을 벌였으나 '의사 결정 잠정 중단'이라는 결정 외에는 아무 대안도 내놓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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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회 직전 이 행장은 경영협의회를 통해 전산시스템 교체와 관련한 의사결정을 원점에서 재검토한다는 안건을 상정했지만 사외이사들은 이를 사실상 거부했다. 이 안건에는 IBM의 메인프레임을 재입찰 대상에 포함한다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 이사회에 앞서 열린 감사위원회 역시 이번 갈등의 원인이 된 정병기 국민은행 감사의 감사보고서를 청취만 하고 채택하지 않았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이미 금감원 검사가 진행 중인 만큼 감사보고서의 사실 여부를 이사회에서 가리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사회가 책임 있는 결론을 내놓지 못한 것은 사외이사들이 기존 판단을 양보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매우 컸기 때문으로 보인다. 현 상황에서 물러선다는 것은 이번 내분 사태의 원인 제공자임을 자인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이번 이사회에서도 양측은 고성과 함께 책상을 두드리는 등 격앙된 모습을 보이며 대립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이사회가 여론에 떠밀려 억지로 보고를 받는 형식을 취하기는 했지만 다음 단계로 진전된 것은 없다"며 "사실상 자체적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식물 이사회임을 시인한 꼴"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은 국민은행의 내분 사태가 이른 시일 내 해결되기 어렵다고 보고 현재 진행되는 특별검사를 빠르면 5일까지 마무리 짓는다는 방침이다. 다만 검사 결과가 제재심의위원회를 거쳐 공식 결정으로까지 이어지는 데는 한 달 정도의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모든 결정이 금감원 검사 이후로 미뤄지면서 국민은행의 경영 혼선은 상당 기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전산시스템 교체의 경우 금감원 검사 결과가 빨리 나온다 해도 대혼란이 불가피해졌다. 국민은행은 IBM과의 계약이 내년 7월이면 종료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이달 초 시스템 교체 여부를 결정하고 업체를 선정해야 한다. 시스템 교체에 최소 13개월의 시간이 소요되는 탓이다. 시중은행의 한 정보기술(IT) 담당 임원은 "국민은행 이사회가 아무 결정도 내놓지 못하면서 유닉스 시스템으로의 교체 일정은 너무 빡빡해졌다"며 "시스템 교체가 안 되면 IBM과 재계약이라도 해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IBM과도 유리한 조건에서 계약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사회의 파행이 거듭되면서 국민은행의 다른 주요 의사결정 역시 다음달 이후로 유보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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