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덴마크 또 금리 인하… 불붙은 환율전쟁

ECB 양적완화에 美·中 경계감

유로화 급락에 신흥국도 가세… 미국 '강 달러 용인 수준'이 관건

경기 명분 주요국 통화가치 하락유도 잇따라

"달러강세 추이 주시"… 美 결정에 시장 촉각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지난 22일(현지시간) 대규모 양적완화 조치를 발표하면서 글로벌 환율전쟁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ECB의 조치가 나오자 덴마크 중앙은행은 기다렸다는 듯이 기준금리를 추가 인하하고 미국·중국 당국은 환율 추이에 대해 경계감을 드러내는 등 환율전쟁이 확전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경제포럼(WEF) 제45차 연차총회(다보스포럼)에 참석한 골드만삭스의 캐리 콘 대표는 이날 "환율전쟁은 이미 시작됐다"면서 "통화가치를 낮추는 것이 경제성장을 자극하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이미 ECB 통화정책회의를 한 주 앞두고 스위스 중앙은행(SNB)이 금리 인하와 유로화에 대한 최저환율제 폐지 조치로 신호탄을 올린 것을 시작으로 덴마크·캐나다 등 서구 국가들뿐 아니라 인도·페루·중국 등 신흥국들까지 경기를 부양한다는 명분 아래 이례적인 통화완화 정책을 꺼내 든 상태다. 여기에 이날 ECB가 매월 600억유로 규모의 양적완화 조치를 발표한 지 불과 90분 만에 덴마크 중앙은행은 유로화 대비 덴마크 크로네 가치 상승을 저지하기 위해 19일 -0.2%까지 떨어뜨린 예금 기준금리를 -0.35%로 추가 인하했다. 중국 외환당국도 ECB 조치가 "세계 주요 통화가치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유동성 흐름과 환율 영향을 면밀히 감시하겠다"고 경계감을 드러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ECB의 양적완화가 발표대로 오는 2016년 9월에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며 유로화 하락으로 엔화가치 상승 압력이 고조된다면 일본은행의 양적완화 조치도 장기화될 것이라고 내다 봤다.


이들 중앙은행은 금리 인하와 유동성 공급 조치가 모두 경기와 낮은 인플레이션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완화된 통화정책의 효력이 가장 즉각적으로 나타나는 곳은 다름 아닌 외환시장이다. 총 1조1,400억유로라는 대규모 자산매입 조치를 발표한 드라기 총재는 양적완화의 정책목표가 환율이 아니라고 강조했지만 23일 시장에서 유로화 가치는 한때 1유로당 1.1315달러까지 하락하며 2003년 9월 이후 11년4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유로화 가치는 ECB의 양적완화 관측이 고조되면서 지난 6주 동안 9%나 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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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BS의 객장담당 디렉터인 아트 카신은 CNBC에 "ECB가 이번 조치로 얻을 유일한 효과는 유로화 가치 하락"이라며 "통화가치가 떨어지면서 디플레이션은 오히려 더 심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문제는 일본의 '아베노믹스'가 초래한 가파른 엔저에 이어 드라기 총재의 양적완화 조치로 유로화까지 곤두박질치면서 일부 국가들 사이에 국한됐던 통화가치 절하 경쟁이 전 세계에 확산될 수 있다는 점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유로화에 대한 고정환율(페그)제를 고수하고 있는 덴마크는 최근 유로화 약세로 고조되는 크로네화 상승 압력을 저지하기 위해 15~20일 500억크로네(약 77억달러) 규모의 환시장 개입을 단행했다. 경기둔화에 시달리는 중국도 지난해 11월 금리 인하에 이어 새해 들어 잇따라 유동성을 대거 풀고 있다. 글로벌 환율전쟁이 가속화돼 수출이 어려움을 겪을 경우 중국 인민은행이 추가 금리 인하 조치 등으로 환율전쟁에 본격 가담할 가능성이 작지 않다.

하지만 무엇보다 주목되는 것은 미국의 동향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ECB를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이 실물경제 회생을 위한 효과적인 장치로 통화약세 유도에 나섰지만 관건은 미국이 어디까지 달러화 강세를 용인할지에 달려 있다고 분석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도 23일 앞으로 외환시장은 중장기적으로 달러-유로-엔이라는 3대 축의 상대적인 역학관계가 어떻게 달라지느냐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라며 강한 달러를 기준으로 각국 통화가치가 움직이는 현재의 시장질서가 유지될지, 달러화마저 약세로 돌아서는 극심한 환율전쟁의 혼돈이 전개될지는 미국에 달려 있다고 지적했다. 달러화 가치는 미국 경제의 '나 홀로' 회복세에 힘입어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양적완화 규모를 줄여나가고 금리 인상 시점에 대한 논란이 거세졌던 지난해 하반기 이후 다른 주요국 통화 대비 10%가량 절상된 상태다.

이와 관련해 페니 프리츠커 미국 상무장관은 이날 다보스포럼에서 달러 강세가 미국의 무역과 성장에 부담을 줄 수 있는 요소라고 언급하며 "추이를 주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ECB의 양적완화 조치에 대해서는 "유럽은 물론 세계 경제에도 바람직한 것"이라고 평가했지만 달러화의 나 홀로 강세가 실물경제에 초래할 부담을 강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다. 마켓워치도 이날 ECB 때문에 미 연준의 금리 인상 방침이 흔들리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달러화 강세로 수입물가가 하락해 디플레이션 압력이 커지는 데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컨보젝스의 닉 콜러스 수석 시장전략가도 ECB의 조치에 대해서는 좋은 평가를 내리면서도 "이번 조치가 달러화와의 환율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우려된다"고 강조했다.


신경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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