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읍참마속과 집단소송

송영규 증권부 기자 skong@sed.co.kr

중국 삼국시대. 위의 대군과 맞선 촉의 제갈량은 자신이 아끼는 마속(馬謖)에게 보급기지인 가정을 맡겼다. 하지만 마속은 제갈량의 명령을 어기고 욕심을 내다가 가정을 위에 뺏겼다. 제갈량은 눈물을 흘리며 자신이 가장 아끼던 장수인 마속의 목을 벴다. ‘읍참마속(泣斬馬謖) ’이 바로 이것이다. 내년 1월1일부터 집단소송제가 시행된다. 하지만 집단소송제는 시작하기도 전에 벌써 누더기가 된 느낌이다. 정부는 분식회계를 해소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3년간 대기업에 대한 회계감리를 하지 않겠다고 한다. 그리고 이것은 경제를 위한 것이고 기업을 위한 것이라는 사족도 빼지 않았다. 사실 이러한 논리는 과거 십 수년간 들어왔다. 경제개발의 논리로 민주주의가 탄압을 받던 군사독재 시절에도 모든 명분은 ‘나라와 국민경제를 위해서’였다. 집단소송에 걸리면 기업이 거덜날 수도 있고 그러면 경제에도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또 소송이 남발돼 정상적인 기업활동을 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바로 모든 정책의 공정성에 대한 신뢰다. 대기업이라고 해서,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크다고 해서 원칙을 무너뜨리면 정책의 신뢰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법률을 개정해 분식회계에 대한 감리를 눈감아 준다면 누가 공정하고 공평하다고 믿겠는가. 이 정도의 파장도 예상하지 못했다면 과연 그것이 제대로 된 정책인가. 특히 집단소송의 대상기업들에만 일정기간 감리를 안한다면 그보다 규모가 작지만 감리를 받아야 하는 숱한 기업들로서는 상대적 박탈감만 커질 것이 뻔하다. 당사자인 대기업도 마찬가지다. 기업 그 누구도 지금까지 ‘분식을 한 적이 있다’며 용서를 빈 적이 있나. 어느 언론에선가 집단소송제를 빗대어 ‘과거 청산’이 아니라 ‘과거 단죄’라며 기업에 면죄부를 줘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그러나 과거 청산은 과거로부터의 반성에서 출발해야 한다. 반성 없는 청산은 원인 없는 결과와 같기 때문이다. 제갈량은 마속을 벰으로써 눈앞의 이익에 연연하기보다는 법 앞의 평등함을 보여줬고 이를 바탕으로 패전을 면했다. ‘공정’이라는 원칙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진실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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