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동십자각] 인텔이 죽어야 국민PC가 산다

얼마 전 한 친지는 이렇게 물어온 적이 있다. 그는 E-타워가 눈 앞에 있으면 당장 사갈 듯, 사뭇 진지한 표정이었다. 『한국에선 살 수 없다』고 말해줬다. 얼굴이 금세 달라졌다. 「왜 안되나」 하고 따져 묻는 기색이 역력했다.E-타워는 삼보컴퓨터와 KDS의 합작사 E-머신즈가 만든 컴퓨터다. E-타워는 지난해 11월 미국시장에 출시되자마자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올 상반기 저가시장 점유율 1위, 전체 소매 PC시장 3위. 그 어느 컴퓨터도 이루지 못한 기적을 E-타워는 연출했다. IBM, 애플, 패커드벨 등 막강한 컴퓨터업체들이 E-머신즈의 등을 바라봐야 했다. E-타워의 성공 비결은 뭘까.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초저가(超低價)를 실현했기 때문이다. 399달러, 499달러짜리 PC를 살 수 있으리라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었다. E-타워는 위대한 도전이고, 혁명이다. 세계 컴퓨터업체들은 그동안 보이지 않는 「연대」를 맺었다. 1,000~2,000달러라는 비싼 값과 많은 이윤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가격 커넥션」이었다. 그러나 E-타워는 「껌값」으로도 PC 한 대를 살 수 있다는 「진실」을 「현실」로 웅변했다. 399달러짜리 E-타워는 모니터를 포함해도 우리돈으로 60만원 정도. 까맣게 덮여 있던 진실이 하얗게 까발려지자 소비자들은 열광했다. 우리 소비자들도 E-타워를 대망한다. E-타워의 진실을 우리 소비자들이 모를 리 없다. 요즘 국민PC에 쏟아지는 인기는 E-타워 대망론을 그대로 반영한다. 국민PC는 처음엔 E-타워를 방불하게 80만원대의 혁신적인 저가격을 추구했다. 그러나 한국내 메이저 PC업체들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쳤다. 결국 90만원대로 값이 오르면서 스타일이 구겨진채 출발했다. 그럼에도, 구매 신청을 받은지 만 6일만인 1일 현재 6만여건의 신청이 물밀듯이 밀려들고 있다. 하루 1만건 꼴이다. 마치 우리 소비자들은 「90만원짜리 진실」에도 감지덕지하는 듯하다. 그러나 국내 PC가격의 실상은 아직도 몇 꺼풀 덮여 있다. 더 내릴 여지가 있다. PC의 부품중 일부는 독점 공급되다 보니 가격경쟁이 발생하지 않는다. 독점 때문에 부품 구입가격이 비싸면 당연히 제품값은 내리기 어렵다. PC부품중 가장 비싼 CPU(중앙처리장치)가 대표적인 사례다. 국내 PC업체들은 인텔 CPU에 단단히 중독돼 있다. 도저히 끊을 수 없다는 듯 초강력 마약에 취해 산다. CPU가 인텔 제품만 있는 것도 아니다. 대안이 있는데도 그렇다. 우리나라의 컴퓨터시장은 세계에서 손꼽을 정도로 크다. 그러나 전국 어디를 가도 컴퓨터 매장에서 비(非)인텔 PC를 단 한대도 찾기 어렵다. 집도, 직장도 다 버리고 아들·딸 데리고 산으로 가버리는 종교집단의 광신(狂信) 같은 것을 연상케 한다. 인텔이 어떤 곳인가. 순익률이 26%다. 올 상반기 138억달러를 팔아 37억달러의 순익을 봤다. 제조업치곤 떼돈 버는 회사다. 특히 인텔은 자사 CPU를 채택한 전세계 PC업체의 광고비를 일부 대준다. 이처럼 막대한 비용을 쏟아붓고도 엄청난 순익을 낸다. 「폭리」의 또 다른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우리 PC산업이 제대로 가려면 인텔 칩과 MS 윈도라는 독점의 사슬을 끊어야 한다. 그게 소비자가 바라는 「진실」에 접근하는 길이다. 내 PC에 제발 「인텔 아웃사이드」(INTEL OUTSIDE)라는 로고를 붙이고 싶다. 李在權(정보통신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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