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외야 펜스와 완충 사회

박항식 미래부 민관합동 창조경제추진공동단장


대부분의 사람들이 화사하게 핀 벚꽃에서 춘정을 느끼며 봄을 맞이한다. 이상고온으로 예년보다 일찍 벚꽃이 만개해 올해는 봄이 좀 빨리 찾아왔다. 벚꽃 축제를 준비하던 지방자치단체들은 서둘러 축제기간을 일주일 정도 앞당기기도 했다. 하지만 야구 팬들에게 봄은 늘 일정하게 찾아온다. 그들에게는 프로야구 개막이 바로 봄의 전령사이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 프로야구 개막전이 열리면서 7개월간 대장정의 막이 올랐다. 바빠서 야구장에는 자주 가지 못하겠지만 늦은 밤 귀가해서 샤워하고 소파에 편안하게 앉아 TV의 프로야구 녹화중계나 하이라이트를 시청하는 것으로 하루의 피로를 푸는 기분 좋은 일상이 추가됐다.


류현진 선수와 추신수 선수의 메이저리그 활약상을 빠뜨리지 않고 스마트폰과 TV로 확인하는 것도 봄부터 시작하는 즐거운 일 중 하나다. 이들의 활약 때문인지 몰라도 미국 메이저리그와 한국 프로야구의 실력은 예전과 달리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외야 펜스 부근에서의 수비에 관해서라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외야 펜스에 과감하게 몸을 부딪치면서 장타성 타구를 캐치하거나 펜스를 딛고 도약해 홈런성 타구를 잡아내는 멋진 모습을 국내 경기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들다. 실력 탓만은 아니다. 미국 야구장에서는 외야 펜스가 멋진 플레이를 위한 디딤돌 내지는 안전장치 역할을 하지만 우리 구장에서 외야 펜스는 부상 때문에 조심해야 할 대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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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 경기장의 외야 펜스에는 나무를 포함한 다양한 기초소재 위에 반드시 안전 패드를 부착한다. 특히 충격 흡수에 강한 라텍스를 사용해 선수들의 부상 위험을 줄인다. 국내에서는 그동안 광고와 비용 문제 때문에 부상 위험이 높은 딱딱한 펜스의 보수와 보안 작업에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다. 최근 새로 짓거나 보수한 일부 구장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여타 구장이나 아마추어와 학생 선수들이 이용하는 경기장의 안전시설은 여전히 심각한 수준이다. 물에 빠진 경험이 있는 사람이 물을 싫어하는 것처럼 어렸을 때 펜스에서 당한 부상 때문에 생긴 트라우마가 선수 생활 내내 지속될 수도 있다.

외야 펜스의 안전장치 문제가 미국의 실리콘밸리와 국내 창업 환경의 차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봤다. 실리콘밸리에서 성공한 기업의 평균 실패 횟수가 2.8회나 되고 벤처캐피털의 투자 대상 1순위는 두 번 실패한 기업이라고 한다. 실패에 관대하고 재도전과 도약이 언제든지 가능한 완충장치가 완비된 것이 실리콘밸리가 전 세계 정보기술(IT) 산업을 이끌고 있는 힘 중 하나다. 우리는 어떤가. 한 번 창업에 실패하면 연대보증에 따른 채무부담을 감당하기 어렵고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것이 정해진 코스다. 실패의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완충장치 역할을 할 수 있는 푹신한 펜스가 없어 한 번 부상을 입으면 곧바로 퇴출돼 재기가 힘들어진다.

최근 미래창조과학부는 중소기업청과 함께 실패한 기업이 다시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기 위한 '공동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기로 합의했다. 창업, 성장, 퇴출, 재창업이라는 선순환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실리콘밸리와 같은 재도전의 창업 생태계를 마련하기 위한 노력 중 하나다. 선수들이 부상에 대한 공포,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이 맘껏 플레이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 있을 때 창의적인 야구의 꽃이 피는 법이다. 창조경제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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