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벤처.중소기업 새천년을 연다] 중기 정책자금 누수없나

정책진단-②中企정책자금 누수없나『내일까지 착수금 800만원을 넣어야 1억5,000만원의 정책자금 대출을 받을 수 있다고 하더라구요. 농공단지를 담당하는 중소기업진흥공단 직원이 곧 인사이동이 있기 때문에 빨리 돈을 써야 한다고 합디다.』 M씨는 최근 농공단지에서 창업을 할 생각으로 이리저리 알아보다 「○○컨설팅」으로부터 이같은 대출알선 제의를 받았다. 국내 정책자금 대출알선 브로커수는 약 8,000만명. 브로커가 이렇게 많은 것은 정책자금이 싼 이자에다 은행대출에 비해 알선이 쉽고 허점이 많기 때문이다. 올해 중소기업 관련 정책자금 규모는 3조8,000여억원. 대출조건은 대개 연리 6.5%에 3년 거치 5년 분할상환이다. 정책자금은 말 그대로 「정책적으로 공급하기」 때문에 쏟아붓는 성격이 강하다. 『벤처 창업자금 같은 정책자금은 반 정도는 버리는 셈치고 주는 겁니다. 나머지만 제대로 쓰여도 정책목표는 달성한 것입니다.』 정책자금을 비판하는 데 대해 중소기업청 관계자는 이렇게 반박했다. 그러나 이런 안이한 정책당국의 인식은 중소기업 지원자금을 「눈먼 돈」으로 만들고 있다. 허술한 심사, 퍼주기식 집행으로 국민세금이 새고 있는 것이다. 기술신용보증기금의 박용희(朴容晞) 이사가 26일 수원지검에 전격 구속됐다. 브로커로부터 4,000여만원의 금품을 받고 보증서를 발급해준 혐의다. 신용보증서와 관련해 횡행하던 브로커에 대한 소문이 사실로 드러난 예다. 전업 브로커만 정책자금을 요리하지는 않는다. 정책자금의 허점을 알게 된 사장들이 자신은 물론 주위업체들의 대출건을 알선해준다. 벤처기업인 N통신의 K사장은 『정보통신 관련 정책자금은 신청서만 잘 쓰면 거저먹기』라며 『문제는 담보인데 부동산업자와 사장이 함께 짜면 된다』고 말했다. 이렇게 받은 돈은 투자신탁 등에 넣어 이자를 반반씩 나눈다. 이처럼 브로커가 개입된 예는 한둘이 아니다. D기업의 K사장은 『무슨 컨설팅이니 상담회사니 하는 곳은 십중팔구 브로커』라며 『심지어 신보·중진공의 퇴직자나 중기청 경영기술지원단의 일부도 브로커 활동을 한다』고 지적했다. 이들 브로커는 대출담당 직원들을 매수해놓고 관리를 한다. 관련 직원들은 브로커인 줄 뻔히 알면서도 「정책자금 나눠먹기」에 함께 나서고 있다. 지난 96년에는 중진공 경남지부의 지역본부장 이하 간부들이 브로커들과 공모, 200억원이 넘는 돈을 대출해주고 차와 수천만원의 돈을 받아 챙겼다. 브로커 등 정책자금과 관련해 잡음이 끊이지 않는 것은 그만큼 구멍이 많기 때문이다. 우선 퍼주기식 집행이 문제다. 중진공이나 신보 등은 지부 또는 지점간 실적경쟁을 시켜 부진한 지부책임자를 문책한다. 두달 동안 4,000억원을 지원했느니 하는 발표의 이면에는 단시일 내에 무리하게 자금을 집행한 흔적이 역력하다. 또 복잡한 서류를 작성하는 데 애를 먹는 사장들을 브로커들이 서류대행을 앞세워 유혹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문제는 집행기관들이 은행과 똑같이 대출을 하면서도 제대로 된 내부통제 시스템조차 갖추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중진공 12개 지역본부에는 장기근무자들이 많다. 이들 중 대부분이 그 지역 출신이다. 자기 고향에서 유지행세를 하며 지역업체들과 유착관계를 맺는다는 지적이다. 실제 10년 이상 한 지역에만 근무한 직원도 있다. 연고지 제외, 3년 순환근무원칙 같은 금융기관의 기초상식이 중진공에는 통하지 않는다. 또 대출 관련 문제가 생겨도 경미한 징계로 끝난다. 올초 실제로 허위서류가 문제가 된 계룡조합사건의 경우 제대로 실사를 하지 않은 책임이 있음에도 당시 협동화사업처장 등은 아무런 문책도 받지 않았다. 여기에다 형식적인 사후관리까지 겹쳐 정책자금이 새고 있는 것이다. 중진공의 구조개선자금은 기계구입 영수증만 있으면 대출을 받을 수 있다. H기업의 L사장은 『구로동이나 문래동 공구상가에 가면 영수증을 아주 쉽게 구할 수 있다』며 『실사가 나오면 미리 중고기계를 빌려 가동하는 척하고 담당직원에게 돈을 쥐어줘 은근슬쩍 넘어가는 수법은 이미 진부한 얘기』라고 말했다. 마구잡이로 쏟아붓는 정책자금이 경제원칙에 맞게 효율적으로 집행되고 있는지도 미지수다. 세금으로 조성된 막대한 자금이 부실기업 목숨잇기에 쓰인다는 비판이다. 한계기업은 퇴출돼야 함에도 브로커나 고위층의 압력 등을 동원, 정책자금을 받아 연명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퍼주기식 정책자금 집행으로 일부 업종의 경우 너도나도 중진공의 구조개선자금을 받아 설비개체를 했다가 설비과잉으로 도산하는 웃지 못할 일도 있다. 스티로폴 제조업체인 J사 관계자는 『우리 업종에서만도 정책자금 받아다 자동화설비를 들여놓은 업체가 한둘이 아니다』며 『그런데 수출이나 내수 모두 시장 자체가 늘지 않아 대부분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책자금이 물량공세에 치우쳐 있는 상황에서 자금이 효율적으로 집행되는지 여부를 제대로 분석하지도 못하는 실정이다. 구조개선자금의 경우 용역비를 주는 중진공의 입맛에 맞게 평가내용이 고쳐진다. 그래서 언제나 중진공의 자금집행은 성공적이다. 업계 및 학계에서는 이런 정책자금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독립된 민간기관에서 정책자금 평가를 맡아 피드백(FEED-BACK)을 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또 지원기관들의 자금집행 시스템의 투명성을 높이는 한편 심사전문성도 크게 개선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브로커 등 정책자금 관련 비리를 발본색원하고 자금신청 절차 등을 단순화해 중소기업들의 애로를 덜어주는 게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일부에서 자금집행기관 직원들의 재산내역 조사 처방까지 내놓을 정도로 비리가 만연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성장기업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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