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외교가 요즘 날개를 날았다.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동북아에서 ‘왕따’를 당하던 게 일본 외교였다. 일본은 지난달 9일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자 가장 먼저 독자적인 대북 제재안을 만들었다. 공교롭게도 순번제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국도 일본이었다. 일본은 유엔 제재 결의안 채택 이후에도 미국과 보조를 맞추며 북핵 문제를 둘러싼 국제사회의 외교전에서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발언권을 행사하고 있다.
‘일본판 북풍’에 자신감이 넘친 탓인가. 출범 1개월을 갓 넘긴 아베 정권은 벌써부터 동북아 외교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벌이고 있다. 취임 이후 아베 신조 총리의 궤적을 보자.
아베 총리는 지난달 3일 중의원 본회의에서 출석, 민감한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답변에서 주변국을 자극하지 않는 절제된 표현을 썼다. 의원 시절 “위안부는 존재하지 않았다”며 역사교과서에서 위안부 관련 기술을 없애는 데 앞장서왔던 그는 이 자리에서 “일본 정부의 기본적인 견해는 (종군위안부 존재를 인정한) ‘고노담화’를 계승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국회 답변은 ‘위안부는 날조’라는 개인적 소신을 꺾지 않으면서도 주말로 예정된 한국ㆍ중국 방문을 앞두고 외교적 마찰을 일단 피해가려는 외교적 수사쯤으로 해석됐다.
북핵 문제로 ‘역사논쟁’을 피해나간 아베 정권의 속내는 이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시모무라 하쿠분 관방부장관이 지난달 25일 ‘고노담화’를 부정하는 망언에 대해 아베 총리는 다음날 “국회의원으로서 개인의 의견을 말한 것으로 문제가 없다고 본다”고 옹호했다. 이를 두고 마이니치신문은 시모무라 관방부장관의 발언은 아베 총리의 본심을 대변하고 있다고 정곡을 찔렀다.
아베 정부의 이중적 태도는 핵무장론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베 총리는 당ㆍ정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핵무장론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밝히지 않은 채 “(개인적 차원의) 논의를 봉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아직까지 아베 총리는 동북아 외교관계에 영향을 줄 만한 속내를 직접 드러내지는 않고 있다. 야스쿠니 신사참배에 대해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겠다”며 애매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의원 시절부터 ‘할 말을 해야겠다’던 아베 총리의 ‘두 얼굴’이 드러나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