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올해의 주요 경제판결] <1> 경영활동 안정·자율성 배려 선고 많아

"BW 저가발행 불공정거래 아니다"

[올해의 주요 경제판결] 경영활동 안정·자율성 배려 선고 많아 "BW 저가발행 불공정거래 아니다" 올해 굵직한 경제 판결은 어려운 경기 여건을 감안한 덕분인지 기업가 정신을 북돋우고 경영ㆍ경제활동의 안정성에 무게를 두는 취지의 선고가 많았다. 초대형 인프라 국책사업인 새만금공사 재개 명령부터 경영 실패에 따른 하급심의 기업인 배임죄 유죄 판결을 상급 법원이 잇달아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한 것에 이르기까지 상당부분 경제ㆍ경영의 자율성 및 연속성을 보장해 주는 판결이 주목을 받았다. 외국 투기 자본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외국계 펀드 소버린이 경영진 교체를 위해 SK를 상대로 제기한 임시주총 소집 신청을 기각한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이밖에 법적 안정성을 위해 유사 휘발유 세녹스 판매에 대해 유죄 판결과 실질 과세 원칙에 따라 분식 회계로 더 낸 세금은 되돌려 받아야 한다는 판결도 나왔다. 올해 주요 경제판결을 간추린다. ◇삼성SDS 변칙증여, 부당내부거래 아니다=대법원은 9월24일 삼성SDS가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장남인 이재용씨 등 특수관계인에게 자사 BW(신주인수권부사채)를 저가 매각한 것은 불공정 거래로 볼 수 없다고 판결함으로써 공정위의 재벌에 대한 공정거래 조사가 전면 재검토되는 계기가 마련됐다. 대법원은 BW 저가 발행이 특정인에게 경제력 집중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지만 공정거래법상 불공정한 시장 경쟁을 야기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이같이 판시했다. 이에 따라 공정위가 그 동안 ‘재벌 변칙 증여=불공정 거래’라는 등식 하에 재벌과 특수관계인간 부당거래에 과징금을 부과했던 관행에 제동이 걸리는 것은 물론 유사 소송이 전면 재검토되는 상황이 됐다. 공정위는 LG 등 재벌그룹과 언론사 등이 관련된 10여건의 변칙 상속ㆍ증여에 대해 조사 및 소송을 진행중이다. 강철규 공정위 위원장은 “이번 대법원 판결이 공정위 결정과 다르게 내려진 것은 철학의 차이 때문이다”며 “개인적으로 승복하기 어렵지만 대법원 판결이 내려진 만큼 유사한 사건에 대해 소송을 계속 진행할지 여부를 검토중이다”고 말했다. ◇대법, 배임죄 엄격 적용=대법원이 하급심에서 회사에 손실을 끼친 혐의로 배임죄가 인정된 기업인 사건에 대해 ‘선의의’ 경영 실패를 형사범으로 취급할 경우 기업가 정신이 위축될 수 있다며 잇달아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해 배임죄 적용에 있어 ‘고의성’ 여부가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떠올랐다. 기업 경영에는 위험이 존재하기 때문에 경영상 판단의 결과로 손실이 발생했다 하더라도 배임죄 적용은 엄격한 기준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결 취지. 대법원은 부도난 한보ㆍ삼미 등 부실기업에 거액의 지급보증을 해 줘 회사에 손실을 끼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등)로 유죄가 인정된 고모, 심모 전 대한보증보험 사장에 대해 “예측과 판단 착오로 기업에 손해를 끼치는 행위에 배임죄를 적용한다면 기업가 정신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게 된다”며 원심 유죄 판결을 뒤집었다. 법원은 또 검찰이 건설사인 신한을 무자본 인수합병(M&A)하는 과정에서 신한 자산을 담보로 자금을 차입했다며 신한 대표 김모씨를 배임 혐의로 기소했지만 회사 정상화를 위한 경영 판단이었다며 무죄 판결했다. 법원은 객관적 회사 손실이 없다면 ‘고의’를 입증할 수 있는 간접 사실이 필요한데 신한은 자금 차입으로 오히려 회사 사정이 좋아졌다며 이같이 판시했다. ◇‘즉시퇴출제’ 위헌소지 가처분=서울남부지법은 지난 6월 지누스㈜가 “화의절차 신청만을 이유로 증시에서 퇴출시키는 것은 부당하다”며 증권거래소를 상대로 낸 ‘주권상장폐지 금지’ 가처분신청에서 “즉시퇴출제는 헌법상 비례의 원칙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는 기업 회생을 위해 법정관리나 화의를 신청한 기업들을 증시에서 무조건 퇴출시키는 ‘즉시퇴출제’에 대해 법원이 처음으로 제동을 건 결정이었다. 당시 본지가 단독 보도한 지누스 소송이 증권시장에 미친 파장은 지대했다. 즉시퇴출제의 부당성을 호소하던 일부 법정관리ㆍ화의 신청 기업들의 유사 소송이 잇따랐고 즉시퇴출제의 문제점이 본격적으로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이어 여론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았던 금감위는 마침내 “올해까지 퇴출이 유예된 기업에 대해서는 내년 3월까지 유예기간을 연장하겠다”며 기존의 퇴출원칙 고수 입장에서 한 발 물러서는 등 적잖은 성과도 나타났다. 이로 인해 대한통운, 나산 등 퇴출 공포에 시달리던 법정관리ㆍ화의 기업들이 보다 안정적으로 회생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다. 현재 지누스 소송은 가처분 결정 이후 서울남부지법(민사13부)에서 본안소송이 진행 중見?본안에서도 지누스가 승소할 경우 금감위는 즉시퇴출제의 존폐ㆍ수정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진달래아파트, 일조ㆍ조망권 108억원 배상조정=지난 4월말 국내 일조ㆍ조망권 소송 사상 초유의 ‘사건’이 발생했다. 서울 도곡동 진달래1차아파트 주민들이 도곡주공1차아파트 재건축조합을 상대로 낸 일조ㆍ조망권 소송에서 108억원이라는 거액의 배상조정이 이뤄졌기 때문. 이는 소송 당사자들이 조망권에 대한 가치를 인정, 자발적으로 이에 따른 손해를 배상한 최초의 사례였다. 더구나 기존 하급심 판결들은 “조망권은 권리가 아닌 부동산의 특별한 이익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조망권에 대한 가치를 사실상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의미있는 조정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조망권=권리=돈’이라는 인식을 확산시킨 이번 사건을 계기로 유사 분쟁이 잇따라 터졌고 9월 서울고법은 이촌동 리버뷰아파트 주민들이 “한강조망권을 침해당했다”며 L건설사 등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한강 조망권 프리미엄을 처음으로 인정하는 등 그 파장도 상당했다. 강동석 건교부장관도 “(조망권을 인정하는) 법원의 판결이 계속된다면 조망권과 관련한 건축법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조망권 침해에 대한 공법적 규제의 필요성이 공론화되기도 했다. 입력시간 : 2004-12-27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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