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대통령의 시정연설에 대한 재계의 반응은 크게 두가지다. 일단은 조기 국민투표에 대해긍정의 뜻을 표시했다. 하지만 속내로는 걱정의 표정도 역력하다. 재신임 전후로 정부의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 정책이 펼쳐질 경우 대기업들로선 그다지 이로운 것만도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겉으로는 반기지만 불안함으로 속앓이를 하는 형국이다.
재계의 교차되는 시각은 시정 연설후 각 단체와 그룹들이 내놓은 논평에서도 그대로 묻어났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조기 국민투표에 대해 국정 혼란을 조속히 수습하기 위한 결단으로 높이 평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토지공개념에 대해서는 “사유재산권 침해소지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달라. 기업에 추가 부담이 되지 않도록 신중하게 검토해달라”며 우려의 시각을 드러냈다.
이를 반영하듯, 각 그룹 구조조정본부와 정보팀은 이날 오전 긴급 회의를 통해 앞으로 정국의 흐름과 경제에 대한 파장 등에 대해 마라톤 회의를 가졌다.
A그룹 관계자는 “정치권에 긴장이 고조되는 시점이어서 기업들은 몸낮추기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누가 이길지 뻔한 상황에서 입바른 소리를 하거나 정부 눈밖에 나고 싶은 기업은 없을 것”이라는 말도 나왔다. 재신임 정국이 마무리될 때 까지 괘씸죄에 걸리지 않는게 최선이라는 것이다.
재신임 투표 이후에 대한 걱정도 만만찮다. 한 경제단체 임원은 “노대통령이 재신임에 성공할 경우 정치ㆍ사회ㆍ경제 모든 측면에서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가 펼쳐질 것으로 내다봤다. 경제 위기를 `빌미`로 경제 개혁의 화살을 피하고자 했던 기업들로선 또 한번 높다란 파고에 직면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국 재신임 이전에는 경기부진 속의 사회 혼란과 이로 인한 집단이기주의를, 이후에는 정부의 개혁 드라이브를 맞이할 수 밖에 없다는 게 재계가 갖고 있는 솔직한 마음이다.
<김영기기자 young@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