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스포츠

여왕의 품격

이해 안되는 전광판 점수 보고도 의연

언제나처럼 일어나 관중에게 손 흔들어

플라워 세리머니 땐 1위 소트니코바에 악수 청해

메달 색깔과 상관없이 미소·여유 남기고 은반 떠나

21일(한국시간) 소치 동계올림픽 피겨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 경기가 열린 아이스버그 스케이팅팰리스. 전광판에 김연아(24)의 점수가 나오자 관중석의 희비가 엇갈렸다. 한국에서 온 팬들과 교민들의 장탄식이 러시아 홈 팬들의 환호만큼이나 크게 들렸다. 해외 중계진도 "받아들이기 힘든 판정"이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김연아는 의연했다. 전날 쇼트프로그램 때도 점수를 보고 "아, 짜다"라며 '귀엽게' 불만을 드러내기만 했던 김연아는 언제나처럼 일어나 관중에게 손을 흔들었다. 여느 대회에서 금메달을 딸 때의 표정과 다르지 않은 미소와 함께였다. 경기 뒤 플라워 세리머니(꽃다발 시상식) 땐 1위를 한 아델리나 소트니코바(18·러시아)와 선뜻 악수도 했다. 그렇게 김연아는 마지막까지 우리에게 '여왕'의 미소와 여유를 남기고 은반을 떠났다.


이날 프리스케이팅에서 김연아가 받은 점수는 144.19점. 소트니코바가 149.95점을 얻는 바람에 합계에서 밀렸다. 224.59점의 소트니코바가 금메달, 219.11점의 김연아는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1년 4월 세계선수권 2위 이후 3년 만의 은메달. 여자 싱글 사상 세 번째 올림픽 2연패의 주인공은 되지 못했지만 김연아는 "행복하다"고 했다.

김연아가 불리한 판정에 불이익을 당하기는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김연아는 개의치 않고 다음 무대를 별렀다. 이번은 더 이상 다음 기회가 없는 마지막 무대. 끝까지 걸림돌로 작용한 판정에 마음이 상할만도 했지만 김연아는 우리가 알던 김연아 그대로였다. "(점수는)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니까 받아들여야죠."

김연아는 2008년 그랑프리 대회인 컵오브차이나에서 에지(스케이트 날)를 잘못 사용했다는 '롱 에지' 판정을 받았다. 첫 점프인 트리플 플립-트리플 토루프에서였다. 트리플 플립 도약 때 바깥 날로 뛰었다는 것. 2009년 세계선수권에서도 '어텐션(주의)' 판정이 나왔다.


하지만 느린 화면을 봐도 문제가 될만한 장면은 없었다. 트리플 플립에서 롱 에지 판정이 끊이지 않자 김연아는 첫 점프를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로 바꿨다. 그러자 트리플 토루프에서 문제가 제기됐다. 2010년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토루프 3회전 때 회전 수가 부족하다는 '트집'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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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해외 피겨 전문기자 등의 여론은 문제가 없다는 쪽이었지만 테크니컬 패널을 맡은 미리암 로리올오버윌러(스위스) 심판은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이날 김연아는 상당한 부담 속에서 맨 마지막 순서로 은반 위에 섰다. 앞서 연기를 펼친 소트니코바가 고득점을 기록해놓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김연아는 자신의 피겨 인생을 한 무대에 담아 보이겠다는 듯이 완벽한 연기로 팬들에게 작별 선물을 선사했다. 탱고곡 '아디오스 노니노'의 선율에 맞춰 연기를 시작한 김연아는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 점프(기본점 10.10점)를 비롯한 처음 세 번의 점프를 무사히 소화하며 순항했다. 경기 시간 절반이 지나 기본점에 10%의 가산점이 붙는 구간에 들어선 김연아는 트리플 러츠(기본점 6.60), 더블 악셀-더블 토루프-더블 루프 콤비네이션 점프(기본점 7.04점), 트리플 살코(기본점 4.62점)가 쉴 새 없이 이어지는 구간을 실수 없이 넘겨 수행점수(GOE)로 2.69점을 더했다.

이어 음악과 일체된 우아한 동작을 보여준 김연아는 마지막으로 더블 악셀 점프(기본점 3.63점)를 뛰었고 절정을 향하는 음악과 함께 스핀 연기를 펼쳤다. 강한 악센트가 느껴지는 음악과 함께 양팔을 교차하는 연기를 마무리한 김연아는 관중을 향해 손을 흔들며 선수로서의 작별 의식을 치렀다.

후련함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미소를 지으며 빙판에서 빠져나와 코치 품에 안긴 뒤에는 만감이 섞인 눈물을 터뜨렸다.

전광판에 은메달을 뜻하는 219.11점이 찍혔을 때도 자신의 마지막 연기에 만족하며 미소를 잃지 않았다. 메달 색깔과 상관없이 김연아가 이번 대회 승리자임을 온 국민과 함께 공감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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