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포럼] 대학을 대학답게

서승직 인하대 건축학부 교수


얼마 전 대학재학 중 경찰초급간부가 된 제자로부터 e메일을 받았다. 내용인즉 복학해 학업을 마쳐야 할지 아니면 자퇴를 해야 할지 고민이라는 것. 출중한 스펙을 다 쌓아도 직장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보다도 어려운 것이 현실인지라 딱히 뭐라고 말해야 할지 고민한 적이 있었다. 대학 재적학생 10명 중 3명이 휴학 중에 있다는 대학교육협의회의 최근 공시정보는 현실을 잘 대변하고 있다.

취업 위한 스펙·간판 취득기관 전락

이런 세태는 대학이 학벌중심사회에서 필요한 간판과 스펙만을 취득하는 기관으로 전락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실상이다. 이는 대학이 보편적 이상을 실현할 진리탐구의 정체성을 잃고 있음의 증거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지금 대학들이 겪고 있는 문제는 교육의 백년대계를 간과한 포퓰리즘 정치에서 비롯된 대학만능주의의 교육정책 때문이다. 대학의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될 때마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기보다는 인기에 영합한 정책만을 펴왔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전문대학과 특성화고의 정체성마저 연쇄적으로 잃게 만든 것이다.


학령인구감소가 현실로 도래하면서 대학의 구조조정은 이제 발등의 불이 됐다. 하지만 대학을 대학답게 육성할 수 있는 개혁과 혁신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단지 정원조정만으로는 대학의 정체성 회복은 물론 대학을 대학답게 살릴 수 없다. 대학졸업이 곧 실업자가 되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공계 졸업생의 경우 대학졸업장·학사학위증·공학인증·기사자격증·외국어·컴퓨터스킬 등등을 포함한 정부공인 각종자격증을 한 보따리 짊어지고 대학문을 나서지만 정작 이 자격증을 경쟁력으로 인정하는 곳은 대한민국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이다. 단지 입사지원서를 제출하기 위한 스펙에 불과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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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노력으로 쌓은 스펙이 경쟁력이 되지 못하는 각종 제도의 난무로 본질은 간과하고 현상만을 지나치게 추구한 겉치레교육만 남았다. 게다가 학점인플레이션, 졸업학점의 하향조정, 수업일수 축소, 필수과목 축소, 실효성을 간과한 영어강의 등등은 보이기 위한 홍보효과는 있을지 모르지만 분명 경쟁력을 외면한 변질이다.

대학졸업장이 곧 경쟁력이 되는 교육시스템구축이 대학이 바로 서는 길이다. 인성을 갖춘 전문가 육성을 위한 시스템개혁과 혁신이 대학 구조조정의 본질임을 직시해야 한다. 도토리 키재기식 평가와 실속도 없는 각종 제도는 과감하게 혁신해야 한다.

교육시스템 개혁 정체성 회복부터

대학을 대학답게 살리는 일은 형평성을 중시하는 공평과 평등의 능력중심사회를 다지는 초석이다. 대학은 미래의 가치 있는 유·무형의 국가경쟁력을 키우는 산실이 돼야 한다. 빈곤탈출과 산업화의 동력이 교육열의 강점에서 비롯됐지만 국내총생산(GDP) 10위권의 압축성장 이후 교육열의 강점은 학벌만능주의라는 망국병을 불러왔다.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은 대학의 올바른 정체성 회복을 위한 혁신과 개혁이다.

스펙 쌓기에 내몰린 대학생과 자식 때문에 등골이 휜 학부모의 신음소리를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된다. 암울한 대학의 현실을 외면하고 능력중심사회를 외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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