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봐, 왜 남의 소중한 재산에다 발길질을 하는거야!』양떼의 주인 단도우가 소리지르며 파뉼주의 허리를 되받아 질렀다. 맞은 파뉼주는 복수하기로 작정하고 양떼 중에서 시가 몇배의 값을 지불하고 단도우로부터 양 한마리를 샀다. 이 양의 거취에 주목해주시기 바란다.
민주정치가 정착된 서구나 미국에서의 언론용어이겠지만 「보스정치」라는 용어를 사용한다는 얘기는 듣지를 못했다. 일본에서는 사용한다지만 천황제도 밑에서 취택된 일본정치의 「보스」 개념은 우리와는 많은 차이가 난다.
어쨌든 문제가 되는 것은 보스정치의 배경이나 개념이 인맥과 지연과 자금을 발판으로 생성돼 왔다는 사실에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발전을 이룩한다는 뜻은 독재정당이 아닌 정책정당으로서의 발달로 알고 있다. 지금 신당을 만든다고 한다. 정치 참여자가 새얼굴은 아니더라도 기왕의 정치구조적 모순만큼은 시정하여야 개혁적이다. 그런데 극단적 지역주의와 인맥과 금권이라는 부정적 요소를 필연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한국적 보스정치가 존재하는 한 희망적인 비전은 보이지 않는다.
보스정치는 중세 이전 농경시대에서나 존재하던 봉건정치가 그 원조다. 그래서 한국 정치 자체가 정치적으로는 전근대적이다. 시대는 정보화시대로 돌입했다. 포스트모던은 정치적인 방향 설정의 개념까지도 포괄한다.
파뉼주는 제가 산 양을 바다에 던져버린다. 그러자 두목을 절대적으로 추종하는 습성이 있는 갑판의 양떼들은 줄줄이 물속으로 몸을 던졌다. 프랑스의 작가 프랑소와 라보레의 일화집에 나온다.
「플루타르크영웅전」에도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로마인들은 양과 같다. 혼자서는 목동의 뒤를 따르지 않지만 떼지어 있으면 서로의 애정(지연·인맥·금권) 때문에 앞장선 보스의 뒤를 충실히 따른다. 결국 제군은 보스와 함께 죽음으로까지 끌려가는 것이다.」
보스정치가 민주주의를 파멸시킨다는 경고를 한번쯤은 경청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