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데스크 칼럼] 신제윤의 治


금융 주변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그를 '관치(官治)의 막내'라고 부른다.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이 "관(官)은 치(治)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했지만 그 역시 못지 않은 카리스마를 자랑한다.

신제윤 금융위원장 내정자. 그가 다시 금융으로 돌아왔다. 사실 그는 금융인들이 가장 까다로워 하는 모피아(옛 재무 관료의 약칭) 중 한 명이다. 호방하고 솔직한 성품이지만 누구보다 금융의 '규율'을 중요시한다. 시장에 대해 금융 당국의 영(令)이 서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 그가 내정 발표 직후 꺼낸 일성이 바로 '치(治)'였다. 신 내정자는 임명 직후인 지난 2일 밤 본지 기자와 만나 시장에 대한 주관을 가감 없이 얘기했다. 그중에서도 '정치금융'을 지적한 부분은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그는 "관치가 없으면 정치(政治)가 되는 것이고 정치가 없으면 호가호위하는 사람들의 내치(內治)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어순에 따라 논리를 따지다 보면 한이 없겠지만 작금의 금융산업을 이보다 잘 대변할 말은 없을 것이다.


그의 발언이 나온 직후 금융회사들은 속된 말로 호떡집에 불이 날 정도로 뒤집혔다. 심지어 일부 금융지주회사는 발언 전문을 달라고 본지에 거듭 요청해왔고 어떤 이는 "신제윤이 그렇게 말할 리 없다"고까지 했다고 한다. 심지어 일부 지주회장을 몰아내기 위한 음모론이 아니냐고 해석하는 사람들까지 나오는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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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상황까지 벌어지는 것일까. 되집어 보면 이런 풍경 자체가 웃음을 넘어 슬픔을 느끼게 한다. 이명박 정권의 인사가 많은 부분에서 비판을 받았지만 개중에서도 가장 상징적인 것이 이른바 '금융의 4대 천황, 5대 천황'이었다. 지주회장의 권력이 워낙 막강하고 대통령과의 친분이 두터워 지어진 별칭이다.

도대체 위세가 얼마나 되길래 이런 말까지 나온 것일까. 지주회장이 '은행장 위의 은행장'이라는 말이 나온 것은 이미 오래 전이다. 은행장이 할 일을 시시콜콜 챙겨서 하는 말이다. 이는 그나마 낫다. 드러나지 않은 것까지 알고 나면 한숨이 술술 나온다. 어떤 회장은 자회사에 앉아 있는 후배들로부터 계열사 최고경영자(CEO)의 동향을 비밀리에 일일 보고 받고 있다. 심지어 어떤 회장은 골프장에서까지 그룹 임직원들이 길게 도열해 기다리고 있을 정도라고 한다. 웬만한 중견그룹 회장 못지 않다.

지금의 은행장이 '본부장급 행장'이라고 서글픈 표정을 짓는다고 한다. 하지만 이 정도만 돼도 낫다. 실상 그들의 신세는 자신의 판단대로 대출을 일으키는 본점의 심사역보다 못하다. 청탁에 치여 인사 하나 자신의 뜻대로 못하니 인사 부장이 부러울 따름이다. 하기야 금융위원장이 금융공기업의 1급 인사까지 청와대에 일일이 허락을 받고 그들이 내려주는 인사 명단을 읊는 앵무새로 전락한 것에 비하면 차라리 나은 신세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들이 이처럼 대단한 파워를 휘두를 정도로 우리의 금융산업이 발달해 있을까. 사실 '4대 천황'이라는 말이 나온 것 자체가 아이러니다. 한국의 금융산업은 어떤 업종보다 낙후돼 있다. 우리 같은 경제 규모를 갖고 있으면서 세계 50위 안에 드는 은행이 한 곳도 없는 나라도 없다. 산업의 수준이 이럴진데 그 산업을 이끄는 CEO들은 수십억원의 연봉을 받으며 호가호위하니 금융의 질적 수준이 올라갈 리 있겠는가.

한국의 금융에 대해 "호가호위하는 사람들의 내치"라는 말을 붙인 신 내정자. 그가 가장 먼저 해야 할 부분은 바로 금융산업을 금융인에게 돌려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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